소상공인, ‘생계형’을 넘어 ‘시장확장형’으로
윤재만 전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
입력2026-02-23 11:30
내수침체의 장기화로 대한민국 골목 경제의 체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임대료와 인건비, 대출이자 부담이 누적되면서 소상공인은 한계상황에 내몰렸다. 각종 금융지원과 만기연장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는 시간을 벌어주는 처방일 뿐 구조적 해법은 되지 못한다. 반복되는 위기의 본질은 자금부족이 아니라 ‘내수의존 구조’에 있다. 제한된 국내 수요 안에서 경쟁이 과열되는 한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다. 그러나 그 과실은 주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속에서 축적돼왔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전자상거래의 확산은 규모가 작은 사업자에게도 해외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문제는 역량이 아니라 현실적 장벽이다. 첫 수출단계에서 마주하는 과중한 물류비, 해외인증 등 마케팅 비용, 환율변동 위험은 소상공인에게 여전히 높은 문턱이다. 정부와 관계기관은 수출 초보기업을 위한 원스톱 지원체계를 고도화하고, 해외인증·마케팅비용 지원과 환율변동위험 완화장치를 제도화함으로써 ‘첫 수출의 장벽’을 실질적으로 낮춰야 한다.
물론 모든 소상공인을 일률적으로 수출 기업화하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제조업 기반 특화상품, K콘텐츠 연계상품, 기술집약형 아이디어 제품 등 경쟁력이 입증된 분야는 글로벌 플랫폼 연계, 공동브랜드 구축, 전문무역 인력양성을 통해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반면, 생활밀착형 서비스업과 지역 기반 업종은 지역 경제의 안전판이자 고용의 버팀목이다. 이들 업종은 무리한 외연 확장보다 상권 환경개선, 디지털 전환 지원, 협업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이 타당하다. 선택과 집중의 이원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서울의 대표 전통 도매상권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재도약의 잠재력이 크다. 과거 전국 소매시장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이들 상권을 해외 구매자와 온라인 플랫폼이 결합한 글로벌 유통 허브로 재편한다면 이는 단순한 상권회복을 넘어 한국형 유통 생태계를 세계와 연결하는 구조전환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아파트 단지 등 주거 밀착형 상가는 획일적 업종구성에서 벗어나 지역 수요에 맞춘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의 상권을 복원하는 데 머물지 말고, 변화된 소비환경에 맞게 재설계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이제 수출은 일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준비된 소상공인에게는 생존과 도약을 위한 새로운 경로가 되고 있다. ‘생계형 소상공인’을 ‘시장확장형 소상공인’으로 전환하는 정책적 상상력과 실행력이 절실하다. 골목에서 시작한 작은 가게가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과 연결될 때, 골목 경제의 회복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의 저변도 한층 두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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