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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의 바다를 비추는 협력의 등대

이명구 관세청장

입력2026-02-23 18:13

수정2026-02-24 00:12

지면 34면
이명구 관세청장
이명구 관세청장

아무리 잘 만든 배라도 폭풍우 치는 밤바다를 홀로 안전하게 건널 수는 없다.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배의 성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바닷길을 촘촘히 잇는 ‘등대’다. 전 세계 2만여 개의 등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불을 밝히며 항로를 하나의 그물망처럼 이어준다. 수많은 나라가 서로의 바다를 비춰주기로 약속했기에 가능한 연대의 결과물이다.

관세 당국 간 국제 협력도 이와 같다. 사람과 자본, 데이터와 물류가 긴밀하게 연결된 시대는 더 넓은 기회의 바다를 열어줬지만 동시에 복합적인 통상 리스크와 초국가 범죄라는 거센 파도도 몰고 왔다. 이제 어느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무역 원활화와 국경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 국제 협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명확하다. 우리나라, 우리 배에 타고 있는 국민과 기업들이 안전한 항로를 따라 무사히 항해할 수 있도록 전 세계 관세 당국이 서로의 자리에서 기꺼이 등대가 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관세청은 이러한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정신을 현장에서 구체화해 왔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형 전자통관시스템(UNI-PASS) 수출의 현장인 북마케도니아와 이집트를 직접 찾아 협력의 방향을 점검했다. 현재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유럽 등 전 세계 16개국에 보급된 이 시스템은 각국 관세행정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동시에 우리 기업에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통관 환경을 제공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1월에는 한중 정상 임석 하에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K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양방향 공조의 물꼬를 텄다. 2주 전에는 캄보디아와 관세청장 회의를 개최해 골든트라이앵글 주변국 모두와 강력한 마약 차단망을 완성했다. 기술로 길을 넓히고 공조로 위험을 줄이며 다양한 국가들과 직접 마주 앉아 협력의 등댓불을 하나씩 켜온 과정이었다.

이제 그간의 성과를 한데 모아 더 큰 도약을 준비할 때다. 3월 31일부터 3일간 개최되는 ‘코리아 관세 위크(KCW 2026)’는 한국과 긴밀한 통상관계를 맺고 있는 주요 관세 당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글로벌 관세 협력의 집합점’이 될 것이다. 이번 행사는 기업이 직면한 가장 뜨거운 현안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미국의 최신 관세정책과 비특혜원산지 판정 기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기업이 목말라하는 정보를 현지 전문가에게 직접 듣고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및 중앙아시아 국가와는 관세 당국 간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글로벌 통관 환경 개선 세미나를 개최한다. 행사 기간 중 집중적으로 열릴 관세 당국 간 양자 면담을 통해 현지의 통관 장벽을 낮추고 마약 밀수 등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도출하는 밀도 높은 소통이 이뤄질 예정이다.

2025년 우리나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도 역대 최초 수출 700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항해를 마쳤다. 안으로는 민관이 힘을 모으고 밖으로는 세계 각국 관세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안정적인 항로를 지켜왔기에 가능했던 결실이다. 올해도 무역 환경의 안개는 여전하겠지만 그간 쌓아온 견고한 국제적 연대가 있다면 어떤 파고도 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등대는 바다가 잠잠할 때보다 거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KCW 2026에서 그려나갈 협력의 지도가 세계 곳곳의 등대들을 하나로 연결해 통상의 바다에 드리운 불확실성을 걷어내기를 기대한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글로벌 관세행정의 표준을 선도하며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조력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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