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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이 서늘하다

|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입력2026-02-26 07:01

지면 34면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대정맥에 구멍이”

후배의 애절한 외침에도 수술방 다른 이들은 모두 태연한 얼굴이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간 수술을 앞둔 환자의 대정맥에 3㎜ 크기의 구멍이 났다. 아마도 후배의 눈에는 그 작은 틈이 거대한 댐이 무너져 내리는 파열구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거기서 새어나오는 피도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느껴졌을 터다. 그러나 후배를 뺀 모두는 환자의 활력징후가 매우 안정적이고, 출혈양이 150cc 남짓임을 확인했다. 혈관 겸자로 피나는 부위를 잡은 뒤 침착하게 봉합하니 수술도 문제없이 끝났다.

그런데 1년쯤 지나 후배와 다시 만났을 땐 그날의 기억이 홍어가 삭듯이 발효돼 있었다. 3㎜였던 구멍은 3㎝로, 출혈량은 어느새 1000cc로 둔갑했다. 한술 더 떠 환자의 혈압이 바닥을 치는 바람에 손가락으로 30분이나 구멍을 막아야 했다는 영웅담이 펼쳐졌다. 수술장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됐을지 몰라도 우리는 ‘뻔한 클리셰’가 언제 등장할지 예측하기 바빴다. 아니다다를까 몇 년 뒤 만난 후배는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한 또 다른 후배를 위해 직접 나서 상황을 수습했던 새로운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후배 앞에선 “너처럼 처음 수술하는 사람들이 겪는 간담이 서늘한 기분을 수도 없이 경험하고서야 우리도 지금처럼 성장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흔히 뜻밖의 일이나 놀라운 일을 당해 섬뜩해 졌을 때 ‘간담이 서늘하다’거나 ‘간이 떨어질 듯한 기분’이라고 한다. 사실 해부학이나 생리학적으론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복강 안은 양압의 환경이라 간이 떨어질 수 없고, 인간은 항온 동물이라 간담 부위만 서늘할 수 없다. 다만 지나친 근육 긴장과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시적인 상승에 의해 말초 부위의 혈류가 줄고 심리적 공포감이 더해져 서늘함을 느끼게 만들 순 있다. 피부와 장의 점막 등에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면서 등쪽 코어 근육에 피가 쏠리고 상대적으로 그 주변 피부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감소해 체온이 떨어지는 듯 느끼게 된다. 간담이 서늘한 기분은 생리적으로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전이며, 간 건강의 이상 신호가 아니라는 의미다.

수술하는 의사는 자신의 행위가 가끔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보니 항상 긴장한다. 사소한 변화에 집착할 때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객관적으로 환자에게 큰 위해를 끼칠 상황인지를 알게 되며, 사소한 것에 집착해 일을 망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물론 수술 중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미리 예측하고 그러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두는 것도 중요하다.

새해 벽두 의사들 사이에선 ‘3년 내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화제였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이라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으나, 적어도 사람보다 훌륭한 로봇이라면 간담이 서늘할 일은 없지 않을까. 후배들의 무용담을 들어주는 나의 소소한 행복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사람의 손으로 한 수술도 지난 100년간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다음 방식이 로봇이건, 무엇이건, 더욱 안전하고 지금보다 발전된 수술이 가능하기만을 바란다.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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