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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 않기에 더 강렬한…순간을 오롯이 기억하다

■티노 세갈 국내 첫 개인전

촬영 일체 금지…도록도 없어

8점 전시…대표작 ‘키스’ 주목

로댕 조각에 실제 몸짓 더해져

리움미술관서 6월 28일까지

입력2026-02-25 17:39

수정2026-03-03 08:59

지면 33면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장막형 작품을 걷고 들어가면 퍼포먼스로 이뤄진 티노 세갈의 대표작 ‘구성된 상황’이 펼쳐진다. /사진제공=리움미술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장막형 작품을 걷고 들어가면 퍼포먼스로 이뤄진 티노 세갈의 대표작 ‘구성된 상황’이 펼쳐진다. /사진제공=리움미술관

“이 전시는 사진 촬영을 하실 수 없습니다.”

요즘 미술 전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경험 공유가 최상의 목적일 정도로 ‘인증샷’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전시 도우미의 안내가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저작권 때문만이 아니다. 전시를 사진이나 도록으로 기록하지 않고 온전히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완성되는 작품의 특성에서다. 여기에는 작가의 오랜 고집과 철학이 묻어 있다. 리움미술관이 3월 3일 개막하는 전시이자, 올 상반기 가장 주목 끄는 전시 중 하나인 티노 세갈(50)의 국내 첫 개인전 이야기다.

현대예술가 티노 세갈 /사진제공=리움미술관
현대예술가 티노 세갈 /사진제공=리움미술관

◇몸짓으로만 이뤄진 전시

“와우~ 디스 이즈 소 컨템포러리(This is so contemporary)!”

리움미술관 입구에 들어선 순간, 미술관 직원들이 노래하듯 유쾌하게 외치고는 춤을 추며 방문객을 에워싼다. 덩달아 어깨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듯 눈도 맞추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안으로 향하는 관람객도 눈에 띈다. 전시의 시작이다. 티노 세갈이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최연소 대표작가로 참여했을 당시 선보였던 작품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다.

미술관 로비에서는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사부작거리며 기둥을 더듬고, 흐느적대며 주변을 걸어다닌다. 때로 관객에게 아주 사적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커피와 함께 나의 하루가 시작되죠.” 일반적인 행위예술이나 개념미술에서는 이들을 ‘퍼포머’라 하지만 세갈은 ‘해석자(Interpreters)’라 부른다. 이같은 작품 유형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 칭한다. 작가에게는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지 못하기 때문에 관객은 오롯이 자신의 감각과 경험만으로 전시를 새기고, 기록 대신 기억을 담는다.

미술관 입구부터 외부 데크에 조성된 정원까지 총 8점이 선보였다. 그 중 대표작은 단연 ‘키스’(2002)다. 요절한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품인 비즈 커튼을 젖히고 들어서면 로댕의 조각들로 에워싸인 공간에 두 명의 해석자가 뒤엉켜 있다. 실제 사람이 이렇게 진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본다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이다. 에로틱하고 격정적일 장면이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아주 느릿하고 섬세하다. 이로 인해 그들의 몸이 로댕이 빚은 조각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로댕의 ‘키스’를 비롯한 여러 인체 조각, 맨 안쪽의 ‘생각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적 청동조각’과 섬세한 몸짓의 해석자들이 만든 ‘현재의 조각’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순간은 절대 사진으로 담길 수 없다. 2명씩 두 팀으로 이뤄진 해석자들은 전시 시간 8시간 중 매일 4시간씩 교대로 ‘키스’를 수행한다.

◇계약서조차 없지만 작품은 ‘솔드아웃’

1976년 영국 런던에서 독일인 어머니와 인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세갈은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고, 이 때 물질적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고민했다. 이른바 ‘지구의 어떤 자원도 이용하지 않는 생산방식’의 일환으로 무용을 택했고, 현대무용으로 활동하던 중 1990년대 후반 미술관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2년 카셀도쿠멘타에서는 완전한 어둠의 방에서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 만으로 관객의 감각을 극대화 했고,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거머쥐었다.

세갈에게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현재성이다. 사진 촬영은 관객 뿐만 아니라 미술관 측에도 허용하지 않아 도록조차 제작하지 못한다. 미술관이 작품을 구매할 때도 종이 계약서 대신 ‘구두 계약’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유수의 미술관들은 그의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유럽에는 개인 소장가도 있다. 작가의 전속갤러리인 에스더쉬퍼 등에 따르면 2013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무제(Yet Untitled)’는 에디션 전부가 ‘솔드아웃’ 됐다. 누군가 이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소장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티노스튜디오에 연락해 작품을 ‘전수받기* 위해 협업해야 한다. 이 때 컬렉터는 작가가 주는 매뉴얼대로 몸동작, 의상, 대사 등을 재현해야 한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대신 관람객은 반드시 미술관에 가야하고, 촬영에 열중하는 대신 오롯이 작품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8점 중 3점은 6주씩 번갈아 선보인다. 외부 데크 정원의 작품은 나오는 길에 관람하길 추천한다. 전시는 6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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