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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함에 의해 지배되는 시간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입력2026-02-25 17:45

수정2026-02-25 18:56

지면 34면

1550년경 이탈리아 베니스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세 남자의 얼굴이 세 개의 동물 머리 위에 겹쳐진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제작했다. 화면 왼쪽에는 노인과 늑대, 중앙에는 중년 남자와 사자, 오른쪽에는 젊은 남자와 개의 형상이 등장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다수의 두상이 하나의 몸체에 결합돼 있는 듯한 이 기묘한 그림의 의미와 목적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이 작품 속에 시간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담겨 있고 세 남자의 얼굴은 인간의 생애 주기를 상징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서양 문화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이 관례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볼 때 이 그림에는 인생의 세 순간, 즉 노년·성숙·청춘의 시기가 역순으로 표현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인은 과거를 뒤돌아보는 존재이며 정면을 응시하는 성숙한 남성의 얼굴은 행동하는 현재를 의미하고 젊은 청년은 기대에 찬 미래를 대변한다. 각각의 머리 위에 검은색으로 새겨진 라틴어 비문은 이 그림이 시간과 신중함에 대한 우화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3개의 얼굴에 대응하는 라틴어 문구들은 좌측부터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 삶의 교훈을 도출하는 지성, 미래를 위한 현명한 예견을 의미한다. 이 문구들을 연결하면 ‘어제에서 배우고, 오늘은 신중하게 행동하니 자신의 행동으로 내일을 망치지 않는다’는 문장이 완성된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가 60대에 접어든 시점에 그려졌다. 노년의 화가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그림이라는 해석과 더 나아가 그의 예술적 유언이라는 학설도 존재한다. 다른 두 인물상에 비해 어둡고 거칠게 표현된 노인의 얼굴은 화가의 부정적 자아상이라 할 수 있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과거의 무모함과 자만을 후회하는 노인의 얼굴 밑에 놓인 늑대의 머리는 탐욕을 상징한다. 티치아노는 이 작품에서 극적인 명암과 거친 붓자국을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을 통해 은유적이면서도 암시적인 화면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빛과 색채 효과를 통해 감상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강화시키는 전형적인 베니스 화풍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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