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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茶, 중국의 車

100년 전 산업 기반 그대로

2022년 국가 부도 사태 맞아

산업 고도화, 선택 아닌 생존

입력2026-02-27 18:17

수정2026-03-02 10:48

지면 23면

얼마 전 ‘실론티’의 고장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캔디의 차(茶) 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달콤 쌉싸름한 차 향기가 가득한 공장에는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만큼 오래된 기계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70~80년 전 영국 식민 지배 시기에 도입된 기계도 있다고 한다. 기계야 노후되면 업그레이드를 하지만 회계 같은 운영 시스템은 10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산업혁명기로 시간 여행한 기분을 느끼며 공장을 나오는 길에 우연히 중국 전기차 브랜드 비야디(BYD) 매장을 만났다. 중고차를 분해한 부품을 모아 팔고 있는 근처 매장들과 달리 큰 건물에 번쩍거리는 신차를 전시해 둔 BYD는 미래적인 느낌마저 자아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랜드마크인 ‘로투스 타워’와 콜롬보 시내 최중심에 조성 중인 16조 원 규모의 간척 사업 ‘포트 시티’도 중국이 돈을 댄 프로젝트다. 새로 만들어지는 포트 시티의 3분의 1은 중국 소유가 된다.

100년 전 산업에 멈춰 있는 스리랑카와 그런 스리랑카에 침투한 중국 자본의 모습은 현재 스리랑카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22년 스리랑카는 막대한 해외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고 있다. 다행히 스리랑카는 빠른 속도로 외환 위기를 벗어나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자금은 이미 스리랑카 깊숙한 곳까지 장악한 상태다.

2026년 스리랑카의 현실은 산업 고도화가 선택이 아닌 생존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외환 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스리랑카는 차와 향신료 무역, 관광업 덕에 남아시아에서 경제 기초 체력이 탄탄한 국가로 평가됐다. 나쁘지 않은 현실에 머무는 사이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그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한 것은 자본이었다. 위기의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스리랑카를 떠났고 자산 가치가 급락하자 다시 밀려와 헐값에 사들였다. 글로벌 자본의 속도와 규모는 한 국가의 정책 대응 능력을 쉽게 압도한다. 준비되지 않은 국가는 선택권을 잃고 조건을 받아들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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