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E2030이 던진 새 질문: 왜 ‘변환’인가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난양공대 산업처장 겸 변환경제센터장)
RIE2030 톺아보기 ④
입력2026-02-28 19:47
수정2026-03-04 14:56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선형경제가 한계에 부딪혔고, 순환경제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에 도달하면 다음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더 정교한 규제인가, 더 강력한 재활용 의무인가, 아니면 기술 혁신의 속도를 더 높이는 것인가.
싱가포르의 RIE2030은 이 질문에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효율을 더 높이자는 것도 아니고, 순환을 더 철저히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 문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변환하고 있는가.
RIE2030에서 ‘변환’이라는 단어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성장의 문제를 더 이상 생산량이나 효율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대신 가치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묻는다. 같은 자원, 같은 기술, 같은 성과라도 어떤 경제적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데이터다. 데이터는 선형경제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쓰면 없어지는 자원이 아니고, 재활용한다고 가치가 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자산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데이터는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결합되며,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데이터의 성격 변화다.
예를 들어 항만 운영 데이터를 생각해 보자. 선형적 관점에서 데이터는 운영 효율을 높이는 내부 정보다. 선박 대기 시간을 줄이고, 물류 흐름을 최적화하는 도구다. 그러나 이 데이터가 표준화되고, 글로벌 물류 기업과 공유되며, 금융기관의 리스크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항만 데이터는 단순한 운영 자원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신뢰 자산이 된다. 물류 허브로서의 경쟁력은 더 이상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신뢰의 문제가 된다. 이것이 변환이다.
RIE2030은 이 논리를 다른 영역에도 적용한다. 연구 성과는 단기 비용이 아니라 장기 자산으로 변환되어야 하고, ESG는 규제 대응 비용이 아니라 신뢰와 투자 기준으로 변환되어야 하며, 기술은 개별 산업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플랫폼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ESG를 보자. 많은 기업에게 ESG는 보고 의무이자 비용이다. 그러나 탄소 감축 데이터가 국제 공급망의 입찰 조건이 되고, 금융기관의 금리 결정 요소가 되면 ESG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싱가포르가 Digital ESG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SG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디지털화함으로써, 이를 투자 판단과 연결시키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ESG는 비용이 아니라 자본 접근성을 높이는 자산이 된다.
연구 성과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연구는 예산을 소비해 논문과 특허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반도체 설계 역량, 바이오 제조 공정 데이터, 양자 기술 인력 풀이 축적되면 그것은 단순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산업 유치와 글로벌 파트너십의 기반이 된다. 싱가포르가 특정 전략 기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이유는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협상력을 높이는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도시 정책에서도 변환은 분명하다. 물 재활용 기술을 예로 들자. 순환경제의 관점에서 이는 자원을 다시 쓰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되고, 다른 국가의 도시 프로젝트에 적용되며, 싱가포르 기업의 해외 진출과 연결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 관리 기술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수출 가능한 산업 플랫폼이 된다. 자원의 순환이 가치의 변환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이것이 싱가포르가 말하는 변환이다. 변환은 흐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바꾸는 일이다. 무엇이 비용인지, 무엇이 자산인지, 무엇이 규제 대상이고 무엇이 성장 조건인지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순환경제와 변환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순환은 과정 관리의 언어다. 얼마나 버리지 않고 다시 쓰는가를 묻는다. 변환은 결과 설계의 언어다. 그 결과가 어떤 경제적 성격을 갖게 되는지를 묻는다. 싱가포르가 RIE2030을 통해 선택한 언어는 후자다.
왜 지금 이 질문이 중요한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효율 개선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순환만으로는 새로운 성장 서사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변환은 기존 자원과 성과를 전혀 다른 성장 경로로 연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새로운 투입 없이도,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다음 성장 질서의 핵심이 된다.
RIE2030은 변환을 선언으로 끝내지 않는다. 제조, 헬스, 도시, 디지털이라는 네 개의 도메인을 변환의 실험 무대로 설정하고, 연구와 정책, 산업과 금융을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를 설계한다. 변환은 개념이 아니라 실행을 전제로 한 설계다.
이 연재에서 ‘변환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환경제는 순환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순환을 넘어, 가치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경제 구조를 지향한다. 그리고 RIE2030은 그 변환경제를 국가 차원에서 실험하는 최초의 시도 중 하나다.
다음 회에서는 이 변환경제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산업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변환경제의 출발점은 어디이며,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그 이야기는 자원과 자산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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