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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시장 시스템 정비 시급하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블록체인 검증없는 장부 거래 사고 불러

거래소, 실시간 자산 대조 시스템 마련

금융당국, 내부통제 감시감독 강화해야

입력2026-03-03 05:00

지면 30면

지난달 6일 오후 7시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중 2위 규모인 빗썸이 고객들을 위한 랜덤 박스 이벤트를 진행했다. 내용은 약 250~700명의 당첨자에게 1인당 2000원에서 5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당첨금 지급 과정에서 최소 2000원 지급을 최소 2000비트코인 지급으로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범했다. 직원의 이러한 단순 착오 탓에 총 62만 원 규모로 예정된 당첨금이 62만 비트코인으로 지급됐는데 당시 비트코인 1개당 약 9800만 원의 가격을 감안하면 총 62조 원에 상당하는 비트코인이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지급됐다.

당첨된 고객 중 일부는 오지급된 비트코인을 바로 급매도하면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거래소와 괴리를 보이며 폭락하기 시작했다.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이벤트 당첨과 무관한 일부 고객들도 깜짝 놀라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을 저가로 매도하는 바람에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8100만 원대까지 폭락했다. 이벤트에 당첨된 고객 중 한 명이 오지급된 2000비트코인을 즉시 매도했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고 나서야 빗썸 측은 오지급 사태를 깨닫고 사고 발생 40여 분 만에 입출금 및 거래를 차단하고 회수에 나섰다.

이번 빗썸 오지급 사태를 담당 직원의 단순한 입력 오류라는 일회성 사고로 여겨서는 안 된다. 빗썸은 국내에서는 업비트 다음 규모의 가상자산 거래소이며 글로벌 50위 정도의 중위권 규모 거래소이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빗썸이 자체 보유한 비트코인은 175개, 고객이 위탁한 비트코인은 4만 2000여 개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고객이 위탁한 비트코인까지 감안해도 4만 3000여 개의 비트코인만을 보유한 글로벌 중위권 규모의 빗썸이 어떻게 62만 개의 비트코인을 생성해서 배분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기반하기 때문에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해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거래소 내에서 거래될 때에는 블록체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부 데이터베이스의 숫자만 바꾸는 장부 거래 형식으로 이뤄진다. 거래마다 블록체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은 블록체인 검증에 최소 10분에서 평균 1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리적 한계로 블록체인 검증을 거친 단타 매매나 실시간 거래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래소는 내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빛의 속도로 거래를 체결시킨 다음 실제 코인 이동(입출금) 때만 블록체인 검증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거래소의 장부 거래 시스템은 블록체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단순 실수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내부자의 조작도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빗썸 오지급 사태처럼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자산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에는 실제 시장 가격에 충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가상자산의 희소성에 대한 믿음이 한순간에 훼손될 수도 있다.

향후 빗썸 오지급 사태와 유사한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별 거래소는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금융 당국은 가상자산 시장에 보다 정밀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개별 거래소는 자체 보유한 가상자산의 수와 거래소 데이터베이스에 적힌 가상자산의 수를 실시간으로 비교 감시하는 실시간 자산 대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대량의 자산을 이동할 때는 거래소 내의 여러 직원이 독립적으로 승인을 하는 다중 승인 체계를 갖추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개별 거래소의 내부통제에 대한 감독과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주식의 원본 장부는 한국예탁결제원이 보관하고 모든 주식 거래는 한국거래소(KRX)를 통해서만 체결하며 고객들의 예치금은 한국증권금융에서 별도로 보관하는 주식시장처럼 핵심적인 기능을 독립적인 기관들이 나눠 맡도록 가상자산 시장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개별 거래소의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와 금융 당국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정비 노력 없이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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