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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태극마크’ 박해민의 비장한 약속…“개인 목표는 무의미, 조별리그 통과부터 하겠다”

■2026 WBC 대표팀 박해민 인터뷰

“대표팀서 개인 목표는 무의미…조별 통과부터”

“바뀐 타격 폼? 공 더 편히 보려다 자연스레 정착”

“질책은 대회 끝난 뒤에 받겠다”…팬들에 응원 요청

입력2026-03-04 17:30

수정2026-03-04 17:34

2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평가전 한국 대표팀과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9회초 무사 1루 한국 박해민이 번트에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평가전 한국 대표팀과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 9회초 무사 1루 한국 박해민이 번트에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앞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다. 최근 몇 년간 국제무대에서 겪은 부진을 씻어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선수단을 감싸고 있다. 그 중심에는 ‘최고참 야수’ 박해민(36·LG트윈스)이 있다.

오키나와 연습경기에서 7할이 넘는 맹타(7타수 5안타)를 휘두르며 ‘바뀐 타격폼’의 위력을 증명 중인 박해민을 서울경제가 인터뷰했다. 박해민은 화려한 기록보다는 ‘설욕’과 ‘팀’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기댈 곳 없는 선배죠”… ‘최고참’ 박해민의 리더십

박해민에게 이번 WBC는 위치부터가 다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을 당시만 해도 그는 쟁쟁한 선배들의 뒤를 받치며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영광을 만끽하던 위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팀의 중심을 잡고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최고참’이 됐다.

박해민은 “어릴 때는 형들이 많았으니 그저 뽑히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자리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요 몇 년간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설욕하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한국 야구는 2006년 1회 WBC에서 4강 진출, 2009년 준우승이라는 찬란한 역사를 썼지만 이후 17년 가까이 ‘WBC 잔혹사’란 표현이 나올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2013년, 2017년, 2023년까지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고, 최근 2024 프리미어12에서도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에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2026 WBC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는 반드시 1라운드에 통과해 미국에서 열리는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지난달 26일 일본 오키나와현 가데나의 가데나 구장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대표팀과 삼성 라이온즈 연습경기. 4회말 2사 1루 대표팀 1번타자 박해민이 1타점 적시타를 날린 뒤 주루코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일본 오키나와현 가데나의 가데나 구장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대표팀과 삼성 라이온즈 연습경기. 4회말 2사 1루 대표팀 1번타자 박해민이 1타점 적시타를 날린 뒤 주루코치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해민 역시 이런 절박함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기댈 수 있는 선배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묵직한 책임감을 전했다.

그는 후배들이 느낄 중압감을 덜어주는 방식에서도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였다. 무작정 “부담 갖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그는 먼저 장난을 치며 캠프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후배들이 성적에 대한 압박에 짓눌리기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배려하는 ‘박해민식 리더십’이다.

박해민은 “평가전 당시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에 해줬다”며 “사이판·오키나와 캠프에서는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말로만 ‘부담 갖지 말고 우리 재미있게 하자’고 하면 오히려 그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후배들이 너무 긴장하지 않고 대회를 준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려 한다”고 덧붙였다.

7타수 5안타 맹타… 작전 성공률 높이는 ‘오픈 스탠스’로 승부

박해민은 리그 최고로 꼽히는 수비 실력은 물론,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모두 겸비한 ‘완성형 외야수’다. 팬들 사이에서 ‘국중박(국가대표 중견수는 박해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온 그가 이번에는 매서운 타격감까지 장착했다.

실제로 박해민은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구장에서 치른 평가전 기간 동안 7타수 5안타(타율 0.714)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특히 지난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는 7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6-3 승리를 견인했다. 경기 후 그는 “타격폼을 바꾼 뒤 좋은 결과가 이어지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밝혔고, 자연스레 달라진 타격 자세에 관심이 쏠렸다.

이에 박해민은 “누군가의 조언 등 인위적으로 (타격 폼을) 변경한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더 잘 치기 위해, 그리고 공을 더 편하게 보기 위해 루틴을 지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픈 스탠스가 정착됐다”며 “가장 편한 자세로 치려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결과적으로 대표팀에도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박해민은 “타격폼을 수정하며 공이 맞는 면을 많이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맞는 면이 많아지면 작전 성공률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픈 스탠스를 취할 경우 타구가 당겨치기에 치중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을 바라보는 공간에 여유가 생겨 밀어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연습경기에서 타구들이 센터 방면으로 고르게 향하고 있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일본 오키나와현 가데나의 가데나 구장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대표팀과 삼성 라이온즈 연습경기. 4회말 2사 1루 대표팀 2번타자 안현민 타석에서 1루주자 박해민이 2루 도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일본 오키나와현 가데나의 가데나 구장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야구대표팀과 삼성 라이온즈 연습경기. 4회말 2사 1루 대표팀 2번타자 안현민 타석에서 1루주자 박해민이 2루 도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시절인 2015년부터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고, 지난해 커리어 5번째 도루왕(49개)에 오르며 ‘대도’의 면모를 과시한 그이기에 자세 변화가 주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해민은 “중심 이동을 많이 하면서 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1루까지 달리는 속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섞인 시각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작전 상황에서 공을 맞히는 면이 많아진다면, 결과적으로 작전의 성공률이 조금 더 올라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고 덧붙였다.

낯선 구장 펜스를 분석하는 ‘디테일’… 새로운 투수는 ‘단순함’으로 극복

프로 입단 후 총 4번의 국제 대회를 치르고 이번에 5번째 태극마크를 다는 ‘국가대표 중견수’ 박해민의 진가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낯선 구장 적응 노하우를 묻자 그는 분석가로 변신했다.

박해민이 구장에 들어서자마자 향하는 곳은 그라운드의 가장 깊숙한 곳, 바로 외야 펜스 앞. 그는 직접 공을 들고 가서 펜스 여기저기에 던져본다. 타구가 펜스에 맞고 튀어나오는 각도와 속도를 몸소 파악하기 위해서다.

박해민은 “외야수니까 조명은 물론 펜스의 강도 등을 가장 먼저 본다”며 “실제 타구가 펜스에 맞았을 때 어디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튀어나오는지 미리 계산해야 수비 위치를 정확히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배팅 연습 때 단순히 타구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타구가 펜스에 맞았을 때 어느 정도 튀는지 등을 보고 펜스 플레이를 할 때 어디까지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미리 계산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WBC 조별리그가 치러지는 도쿄돔에 대해 박해민은 “펜스가 높고 좌중간·우중간 쪽에 철망 구조물 변수가 있다”며 “낯선 구장에 도착하면 이런 디테일을 먼저 파악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생소한 외국인 투수들을 상대하는 전략도 명쾌하다. 정보가 부족한 외국인 투수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역발상으로 승부한다. 박해민은 “데이터가 많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정보가 없으면 오히려 단순해질 수 있다”며 “복잡한 수 싸움을 하기보다 ‘빠른 공에 늦지 말자’는 한 가지 포인트에만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개인 목표는 무의미…질책은 대회 끝난 뒤 받겠다”

박해민은 이번 대회 개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대표팀에서 개인 목표는 진짜 의미가 없다”며 “팀이 원하는 위치에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만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조별리그 통과’라는 한국 야구의 숙제에 꽂혀 있다. 박해민은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조별 예선 통과다.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음에도 KBO리그는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이번 대회가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전이든 백업이든 상관없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감독님이 원하고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게 그의 진심이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박해민. 연합뉴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박해민.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박해민은 야구 팬들을 향해 간곡히 부탁했다. 박해민은 “한국 야구가 ‘투혼이 좀 부족해졌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는데, 직접 대회를 경험한 선수로서 절대 그런 건 아니다”며 “이번 WBC가 ‘한국 야구는 여전히 강하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에 따르는 모든 질책은 대회가 끝난 뒤 선수들이 받겠다. 다만 대회 기간만큼은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믿고 응원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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