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수영장 물 빠지자 드러난 기초체력…‘외국인 ATM’ 고질병 여전
◆6000피 열었어도 허약한 증시 체질 그대로
외국인 매도·반도체 급락 겹치며 변동성 확대
아시아 증시 중에서도 한국 낙폭 두드러져
에너지·내수·산업 구조 취약성 한꺼번에 노출
입력2026-03-04 17:57
수정2026-03-04 23:42
지면 3면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속에서 코스피가 이틀간 역대급 폭락을 기록하며 한국 증시의 취약한 체질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국인의 대규모 자금 이탈과 반도체 중심 산업 편중, 높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 등 구조적 약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낙폭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의 낙폭은 같은 지정학적 위기를 공유하는 아시아 주요 증시 가운데서도 유독 두드러졌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4일 전장 대비 3.61% 하락 마감했고 대만 자취엔지수도 4.35%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반면 코스피는 12%, 코스닥은 14% 넘게 급락하며 아시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고 한국거래소가 지수 낙폭을 집계한 이래 포인트와 하락률 기준 모두 역대 최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3일과 4일 이틀간 코스피는 무려 1150.59포인트(-18.43%), 코스닥은 214.34포인트(-17.97%)나 추락했다.
전쟁 수혜주로 꼽히며 전날 급등했던 종목들마저 버티지 못했다. 방산과 해운·정유 업종은 장 초반 상승 출발했지만 전방위적인 매도세에 밀려 대부분 하락 전환했다.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주가 급락에 따른 반대매매까지 나온다면 ‘패닉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① 환금성 좋은 韓이 현금화 1순위…외국인 9거래일간 19조 팔아치워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촉매는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3일부터 전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총 19조 5777억 원을 팔아치웠다. 다만 이날은 2437억 원을 순매수하며 최근 이어지던 매도 흐름이 일단 멈춘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마다 외국인 자금이 한국 시장에서 먼저 빠져나가는 구조적 특성이 다시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 비중이 높고 거래가 활발해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현금화가 쉬운 시장으로 꼽힌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낙폭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급등한 데 따른 빠른 주가 되돌림의 성격이 강하다”면서도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동성과 환금성이 가장 좋은 한국 시장에서 현금화하려는 전략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② 삼전·하닉 이틀간 400조 증발…반도체 등 산업 편중이 충격 키워
한국 증시가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시가총액이 집중된 구조라는 점도 낙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 상당수가 반도체와 자동차·2차전지 등 일부 제조업에 집중돼 있어 특정 업종 조정이 지수 급락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다.
이번 급락장에서도 올해 대폭 상승했던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11.74% 하락한 17만 2200원에 거래를 마쳤고 SK하이닉스도 9.58% 내린 84만 9000원에 마감했다. 두 종목에서만 이틀 사이 약 400조 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최근 외국인 매도 역시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다. 지난달 13일부터 이날까지 외국인 순매도 상위 종목을 보면 삼성전자가 17조 1780억 원으로 가장 컸고 SK하이닉스가 4조 4425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하락을 외국인 포지션 축소로 규정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 근거는 업종별 외국인 수급이 반도체에 과도하게 쏠렸다는 점”이라며 “전날 반도체 순매도 규모는 전체 코스피 순매도 규모의 84%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③ 너무 높은 에너지 수입의존도…중동사태 터질 때마다 치명타
에너지 수급 구조와 취약한 내수 기반 등 경제 전반의 구조적 약점까지 겹치면서 위기 상황에서 시장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문제도 고질적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약 71%, 액화천연가스(LNG)의 20%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어 해외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수급 구조는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수입액 폭증→경상수지 악화→ 환율 상승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도체와 철강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산업이 주력이라는 점도 취약 요인으로 꼽힌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먼저 경계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 전반이 조정을 받고 있지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최근 주가 강세가 두드러졌던 한국·일본·대만 증시의 낙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④ 버팀목 약한 내수시장 한계
그나마 내수 기반이 탄탄하다면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한국 경제는 그렇지도 못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로 가계 소득 상당 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쓰이면서 소비 여력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내수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구조적 한계도 지적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약 89%로 집계됐다. 2021년 98.7%로 정점을 찍은 후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국 가운데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 부담이 소비를 제약하면서 경기 충격이 발생할 경우 내수에서 이를 흡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⑤ 구조조정 지연에 한계기업 넘쳐
구조조정 지연으로 한계기업 퇴출 통로가 막힌 점도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다.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을 경우 생산성과 투자 효율이 떨어지고 금융 자금도 비효율적으로 묶인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2022~2024년 사이 고위험 기업이 정상적으로 퇴출되고 정상 기업이 빈자리를 채웠다면 이 기간 국내 GDP가 약 0.4%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실기업 정리가 늦어지면 기업부채와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져 국가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정작 혁신 산업으로 가야할 금융권의 자금이 묶여 경제성장을 가로막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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