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라는 낙인
이영호 마켓시그널부 기자
입력2026-03-04 18:27
지면 30면
“사모펀드(PEF)에 인수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비자나 협력사가 회사에 부정적 인식을 가질까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만났던 PEF 운용사의 최고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 이 얘기를 꺼냈다.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반응들이다. PEF 업계는 산업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자산 효율성을 높여 시장 선순환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PEF라는 사실이 투자에 멍에가 되는 분위기다.
홈플러스 이슈를 계기로 ‘약탈적 자본’이라는 해묵은 프레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결과다.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투자 실패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긴급운영자금(DIP) 상환청구권을 포기했고 김병주 회장은 자택을 담보로 제공했다. 전례 없는 행보지만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작금의 상황이 과연 홈플러스와 MBK만의 문제일까. 회사의 성장 여력을 갉아먹는 과도한 배당이나 자산 유동화, 인력 감축, 가격 인상 등 PEF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었다. 단기에 출자자에게 수익금을 돌려주기 위해 위와 같은 투자 전략이 심심찮게 행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홈플러스는 PEF 투자의 어두운 면을 다시 들춰낸 트리거였다.
이로 인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기관투자가들의 주요 출자 잣대로 올라서는 형국이다. PEF로선 부정적 통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ESG 이행이 중요해졌다. 국회에서는 ESG 강화 법안이 대거 발의됐다. 유명무실했던 ESG 평가를 실효성 있게 바꾸겠다는 의도다.
업계에서는 ESG가 PEF의 투자 범위를 좁히고 수익률을 깎아먹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PEF 고위 관계자는 “해외 기관투자가의 ESG 기준을 맞추다 보니 신규 투자처 낙점이 더욱 어려졌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PEF의 ESG 이행 강화를 더 이상 미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평판 리스크는 현실이 됐다. 기업은 PEF 피인수를 꺼리고 소비자가 PEF 산하 회사의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투자에는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온다. ‘사모펀드’가 사회적 낙인으로 자리 잡기 전에 업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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