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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묵은 법 꺼내 압박…“물가 잡으려다 시장 왜곡 부를 수도”

■정부 가격통제 논란…사문화된 법안 재가동 움직임

‘오일쇼크 유물’ 석유사업법 부활

최고가 지정고시 실무 검토 착수

현실화땐 70년대 물가안정법 동원

생필품·부동산임대료도 상한 가능

“공급자 권한 커지고 암시장 우려”

입력2026-03-06 17:52

수정2026-03-06 23:36

지면 4면
한국석유관리원 및 지자체 관계자들이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유류 품질과 정량 여부, 가격표지판 등을 점검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석유관리원을 비롯해 경찰청, 지방정부 등과 협력해 월 2000회 이상 특별기획검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오승현 기자
한국석유관리원 및 지자체 관계자들이 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유류 품질과 정량 여부, 가격표지판 등을 점검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석유관리원을 비롯해 경찰청, 지방정부 등과 협력해 월 2000회 이상 특별기획검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오승현 기자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 등 유류 제품을 대상으로 가격 상한제 적용을 예고하면서 ‘가격 법정주의(Statutory Pricing)’가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률에 근거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가격 통제가 빈번해질 경우 당장 물가를 잡는 순기능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 기능이 망가져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6일 재정경제부와 산업통상부 등 관계 부처는 석유 최고 가격 지정 고시를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근거 법령은 1970년 제정된 석유사업법 제23조 ‘석유 판매 가격의 최고액’ 조항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와 1990년대 초반 걸프 전쟁 때 적용됐다가 1997년 석유 가격 자유화 조치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번에 고시가 된다면 30여 년 만에 석유 최고 가격제가 부활하는 셈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주무 부처인 산업부와 석유류 최고 가격 지정 고시를 검토하고 있다”며 “고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과거 정부도 물가가 급등할 때 시장에 개입했던 전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이명박 정부가 정유사를 압박해 ℓ당 100원의 가격 인하를 이끌어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에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과 법적으로 의무 상한선을 지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대 중반 셰일 혁명 전까지는 이른바 고유가 시대라고 하면서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겪어본 적도 있지만 정부가 이때도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지는 않았다”며 “이번에 석유가 선례가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가격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고 가격제가 왜 사문화됐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정부가 강압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기업에 얼마나 부담이 갈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가와 재계에서는 이번 상한제가 실행될 경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가격통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카드가 1975년 제정된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이다.

이 법은 “내우외환과 천재지변, 긴급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있을 경우 정부가 중요한 물품의 가격과 부동산 임대료 등의 최고 가격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공적 마스크를 1500원에 판매할 때도 이 법이 동원됐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았던 코로나19 때와 전쟁의 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현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유가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면 그 연쇄 작용은 지금보다 훨씬 크지 않겠느냐”며 “법적으로는 전월세에도 상한제를 부과하는 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가격통제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 수요가 줄어드는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이를 많이 쓰는 사람들한테 혜택이 돌아가는 ‘왜곡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석유 최고 가격제도 정부가 사실상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석유사업법은 최고 가격 지정에 따른 정유 업계 등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석유류 구입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전가된다는 설명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물가 상승보다 시장 왜곡의 부작용이 더 크다”며 “극단적으로 공급자의 권한이 더 커지거나 암시장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가격 명령 제도도 20년 동안 묵은 사실상 사문화된 법인데 얼마 전 다시 가동됐다”며 “법에 근거가 있다고 해서 정부가 가져다 쓰는 게 반드시 옳은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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