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끝내 이야기로 승화하는 순간
작가
고통 겪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 통해
자신만 아픈 게 아니란 걸 깨달아
슬픔 속 큰 사랑이 우리를 이어줘
입력2026-03-06 18:02
수정2026-03-06 23:50
지면 23면
영화 ‘햄넷(Hamnnet)’을 극장에서 관람하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야기마저 없다면, 소설이나 영화나 희곡마저 없다면, 인간은 과연 어떻게 그 모든 슬픔과 분노의 나날들을 견뎌냈을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우리들의 고통을 ‘끝내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화해주는 시와 소설이 있어, 영화와 연극과 오페라와 뮤지컬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콧날이 시큰해졌다. 맥기 오파렐의 소설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이기도 한 클로에 자오 감독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셰익스피어가 흑사병으로 죽은 어린 아들 햄넷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 햄릿을 창작했다는 가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그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온갖 간난신고를 겪으며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아내 아그네스가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며 끝내 매일매일 닥쳐오는 슬픔 속에서도 ‘삶’을 이어갔다는 점이 아닐까.
영화는 차분하고도 집요하게, 깊은 슬픔이 끝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가족을 떠나 머나먼 런던에서 희곡을 써야만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남편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 아그네스. 그녀는 흑사병에 걸린 딸 주디스를 간호하다가 쌍둥이 아들 햄넷을 잃어버리는 그 참혹한 순간 자신이 철저히 혼자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녀가 밤새 주디스를 돌보는 사이 햄넷도 감염됐던 것이다. 지금까지 강인하고 지혜롭게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던 그녀가 돌변한다. 참혹한 슬픔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그때 그 순간,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순간으로 박제된 것이다. 오랜 불화의 시간을 겪는 동안 아그네스는 남겨진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셰익스피어는 이글거리는 슬픔의 용광로 속에서 마침내 불후의 명작 ‘햄릿’을 써낸다.
아그네스는 남편의 연극을 관람하며 비로소 깨닫는다. 나 혼자 겪은 아픔이 아니었구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한 줄 한 줄 아름다운 대사를 쓰던 남편 셰익스피어는 아들 햄넷이 끝내 ‘살지 못한 삶’을 아름다운 희곡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명대사는 참혹한 트라우마의 터널을 통과하며 셰익스피어가 마침내 도달한 슬픔의 클라이막스였던 것이다.
아그네스는 비로소 깨닫는다. 아들을 잃은 나만 슬픈 것이 아니라, 남편 또한 다른 방식으로 홀로 슬퍼하고 있었음을. 나만 슬픈 것이 아니라 햄릿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인파들이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햄릿에 대입하고 공감하며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영화는 저마다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는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삶의 무기가 슬픔을 겪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임을 간절하게 증언한다. 저마다 홀로 겪고 있던 깊은 슬픔 속에 숨겨진 더 큰 사랑으로, 우리는 끝내 이어진 존재임을. 슬픔의 가면을 벗기니 비로소 더 큰 사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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