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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불러온 의료혁명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생활 습관·운동 강도 등 데이터

의료 기록·유전체 분석 결합 땐

AI가 맞춤형 예방 도울 수 있어

입력2026-03-09 05:00

수정2026-03-09 05:00

지면 29면

데이터가 미래를 보여준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잘 나타낸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유전체(유전자 정보), 개인 의료 기록, 그리고 흡연·운동·수면 같은 생활 습관 데이터가 쌓이면서 AI가 이 복잡한 정보를 한꺼번에 읽고 질병 위험과 치료 방향을 더 정확히 제시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먼저 의료 기록 기반 AI가 질병의 흐름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대표 사례가 트랜스포머를 변형해 만든 델파이-2M 모델이다. 몇 달 전 네이처지에 발표된 이 연구는 40만 명 규모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학습해 190만 명의 덴마크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인의 과거 진단 이력과 생활 요인을 바탕으로 1000가지 이상의 질환 발생률을 동시에 예측하고 향후 건강의 궤적을 생성해 10~20년 단위의 질병 부담까지 추정할 수 있음을 보였다. 즉, 질병을 하나씩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병 다음에 어떤 병이 연결될 가능성이 큰가를 시간 순서로 학습하고 답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유전체 해석의 속도와 정확도가 크게 오르면서 DNA 서열로부터 변이를 찾고 유전 질환을 포함한 질환들을 예측하는 것은 이미 당연한 방식이 됐다. 유전체 검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발견된 변이가 정말 병을 일으키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구글 연구진이 개발한 알파미스센스는 단백질의 구조적 맥락과 진화적 보존성을 학습해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는 미스센스 변이가 기능을 없앨 가능성을 대규모로 예측했다. 이를 이용하면 의미가 불분명한 변이들을 줄이고 희귀 질환 진단에서 원인 후보를 좁히며 암 유전체에서 치료 표적이 될 변이를 우선순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변이의 상당수는 단백질을 직접 변화시키지 않고 유전자 발현량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는 DNA 영역에 있다. 엔포머와 같은 모델은 트랜스포머 기반의 딥러닝을 이용해 DNA 서열만으로도 특정 유전자가 어떤 세포에서 얼마나 발현될지 예측하도록 설계돼 비암호화 변이가 질병 위험을 높이는 경로를 더 구체적으로 추적하게 해준다. 유전체 검사에서 놓치기 쉬운 스플라이싱(RNA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붙이는 과정) 변이에서, 스플라이스AI와 같은 모델은 정상 스플라이싱 부위가 깨지거나 숨어 있던 스플라이싱 부위가 새로 생기는 것까지 예측한다. 필자가 20여 년 전 암 환자의 경우 특정 사이토카인의 스플라이싱 변이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많은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떠올리면 AI의 엄청난 힘을 실감하게 된다.

AI를 단백질 구조 예측, 세포 반응 예측에 활용해 실험의 방향을 디자인하는 것은 관련 연구자들에게는 필수가 되고 있다. 단일 세포 유전자 발현 데이터와 유전자 교란 정보를 학습해 어떤 유전자들을 건드리면 세포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예측해 줄 수도 있다. 이는 약물 표적을 찾거나 병용 치료 전략을 설계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개개인의 생활 습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건강 관리와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흡연·음주 여부와 빈도, 수면 패턴, 식습관뿐 아니라 운동을 포함한 활동 지표는 매우 중요하다. 손목 가속도계가 장착된 스마트워치나 피트니스밴드와 같은 웨어러블로 측정한 활동량은 단순한 운동량이 아니라 수백 개 질환의 장기적인 위험과 연관된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영국 바이오뱅크의 손목 가속도계 자료를 활용한 연구는 중강도 이상 신체 활동과 697개 질환 발생의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생활 습관이 질병 예방의 핵심 요소임을 잘 보여줬다. 이런 생활 데이터가 의료 기록 및 유전체 분석과 결합할 때 AI는 환자에게 필요한 예방 전략을 더 개인 맞춤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현재 발표되는 많은 결과가 서양 사람들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데이터가 특정 인구 집단에 치우치면 예측도 편향될 수 있다. 또 개인정보 보호와 왜 그렇게 예측했는지에 관한 설명도 가능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의 흐름은 명확하다. AI는 유전체와 다른 생명 정보 기반으로 질병 원인 후보를 좁히고, 의료 기록으로 미래 위험을 예측하며, 생활 습관 데이터로 예방과 생활 방식을 설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AI가 불러온 의료 혁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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