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의 경고: 조개줍다 해일에 쓸려서야
이상훈 AX콘텐츠랩장
美-이란 전쟁에 韓 펀드멘털 드러나
경제위기, 韓美中 정치 일정 맞물려
美 중동늪 빠질수록 習계산 복잡해져
드론·주한미군 차출 등 변수대비해야
입력2026-03-10 17:30
수정2026-03-10 23:54
지면 30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전황이 예측불허다. 이제 전쟁이 디폴트(기본값)가 된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보노라면 우리 처지를 떠올리게 된다. 당장 세계 최대 화약고로는 호르무즈 해협과 대만 해협(한국과 대만의 산업단지)이 꼽힌다. 호르무즈(석유)와 대만 해협(반도체)은 세계 경제의 혈맥이자, 요충지기도 하다. 지금 한 곳에선 포연이 자욱하고, 다른 한 곳은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염려되는 대목은 전쟁과 맞물린 각국의 대형 정치 이벤트다. 미국(11월 중간선거)은 물론 우리도 6월 지방선거가 있고, 중국은 내년 가을 제21차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의 4연임을 확정한다. 표심 얻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근시안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자칫 눈앞의 조개 하나 더 주우려다 몰려오는 거대한 해일에 쓸려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와 내년이 경제적, 지정학적, 문명사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시기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전략가들은 진작에 이번 전쟁이 대만 해협에 주는 복선을 경고해왔다. “미국이 중동에 자원을 쏟아부어 중국을 억제할 군사 및 정치적 대역폭이 줄고 있다”(할 브랜드 존스홉킨스 교수), “미국이 중동 늪에 다시 빠지는 것은 전략적 자살 행위”(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 된 마당에 터진 이번 전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진짜 호랑이(중국)를 앞에 두고 늑대(이란)와 싸우느라 진을 빼게 됐다.
한 마디로 중국의 대만 간보기가 노골화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이란 전쟁은 대만 침공의 ‘가이드라인’이자 ‘기회의 창’과도 같다. 앞서 시진핑이 올 경제성장률 목표로 4.5~5%를 제시할 만큼 경제가 어려운 것도 불안하다. 이 정도면 지난 1991년(4.5%) 천안문 사태 이후 가장 낮다. 중국이 고속 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대외적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경제 성장의 동력이 떨어질 때 시진핑의 계산기가 더 복잡하고 위험하게 돌아갈 개연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이 이란 전쟁의 늪에 빠져 있는 지금은 중국에게 ‘미국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를 확인하는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실제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은 그간 시진핑의 대만 침공 시점으로 세 번째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을 가장 높게 점쳐왔다.
이제 우리 상황을 둘러보자. 전쟁 여파로 이미 에너지·물가·안보의 3중고에 빠졌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은 단순히 기름값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을 밀어 올려 제조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드론 전력의 정치적 논란, 주한미군 자산 이동 등도 안보 위기를 실질적 위협으로 바꿀 수 있는 리스크다. 그런데도 주위에선 온통 ‘주식이 오르냐 마느냐’ 수준의 지엽적 담론에 갇힌 느낌이다. 사실 자금의 향방을 부동산에서 증시로 틔우기 위한 정권 차원의 노력은 집값을 누르기 위한 극약처방 성격이 강했다.
문제는 유동성이 너무 풀려 급하게 증시가 뛰었고, 전쟁이란 외생변수에 우리 경제가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환율 급등과 맞물려 롤러코스터를 타는 증시가 복합위기의 트리거가 되지 않게끔 과열에 따른 거품을 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주식 차트를 넘어 글로벌 질서의 판 자체가 요동치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대비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평화의 환상에 취해선 곤란하다. 이번 전쟁에서 드론은 가성비 최강의 전략 무기임이 확인됐다. 더구나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론의 위력을 학습하고 복제하고 있다. 우리만 정치적 논란에 비대칭 전력의 핵으로 부상한 드론을 소홀하게 다뤄선 안 될 것이다.
동맹은 소중하지만 스스로 방어할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참에 명심해야 한다. 당장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해외 차출은 곧바로 우리의 취약점이 된다. 낭만적 안보관 자체가 국가를 벼랑으로 내모는 치명적 화근이 될 수 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