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기준 27년만에 손질…‘선거용 선심’ 악용 경계해야
입력2026-03-11 00:05
지면 31면
기획예산처가 지난 27년간 혈세 낭비 사업을 걸러내 온 예비타당성조사제도를 손질한다. 우선 예타 면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규모 기준이 총공사비 500억 원 미만에서 1000억 원 미만으로 완화된다.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오른 건설 관련 물가 등을 반영한 조치다. 예타 항목 중 경제성 가중치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해 5%포인트 낮추고 지역균형발전 평가 가중치는 5%포인트 높인다. 내년에는 지역균형발전 평가를 지역균형성장 평가로 개편한다. 지역 낙후도 등의 기존 정량적 기준에 더해 지역 특수성과 같은 정성적 기준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밝힌 예타 개편의 배경은 지역균형성장 유도, 국가 어젠다 뒷받침, 재정 지원 사업의 효과적 추진 등이다. 지방소멸과 같은 현안 해결의 시급성 등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필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정 어젠다로 포장된 부실 사업들까지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통과할 가능성이 염려된다. 더구나 기획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 한정했던 예타 조사 기관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민간 전문가 컨설팅단도 신설해 사업 타당성 확보 방향까지 제시하기로 했다. 예타는 부실 사업을 걸러내기 위한 제도인데 심사 통과를 위한 컨설팅 역할까지 병행한다면 이해 상충의 소지가 있다. 추가 선정 기관이나 민간 컨설턴트가 평가 사업에 대한 전문성·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 예산 편성의 신뢰성까지 흔들리게 된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예타 기준 완화는 결국 선심성 선거공약에 악용될 것이라는 의혹을 자초할 수 있다. 더구나 올 5월에나 마련될 개정 예타 지침이 지난해 선정된 3차 예타 사업에까지 소급 적용된다고 하니 경계심을 늦추기 어렵다. 심지어 대선 때의 지역 민원성 공약 사업들까지 예산 빗장이 풀릴 판이다. 예타의 모법인 국가재정법은 재정 운용의 효율성·건전성을 입법 목적으로 명시했다. 행정규칙인 예타 운용 지침은 재정 사업에 대한 객관적·중립적 조사 원칙을 못 박았다. 기획처는 제도 개편 과정에서 이 같은 대원칙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야도 재정준칙을 조속히 마련해 혈세 낭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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