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근 메디웨일 대표, 녹내장으로 180도 바뀐 인생…“망막 AI로 심혈관 질환 잡아내죠”
20대 갑작스레 오른쪽 눈 시력 40% 잃어
전조증상 없어 뒤늦게 발견, 치료시기 놓쳐
녹내장 진단해준 교수와 의료AI 공동창업
미세한 혈관 변화 분석 ‘닥터눈’ 기술개발
1분 망막 촬영으로 심근경색·뇌졸중 예측
230만장 데이터로 심장 CT 수준 정확도
국내 의료AI 첫 美FDA 드노보승인 도전
망막 검사로 질환 관리하는 플랫폼 목표
입력2026-03-12 07:01
수정2026-03-12 07:01
지면 26면
해병대를 다녀올 정도로 건강에 자신 있던 26세 청년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눈 시력을 40% 가까이 잃었다는 것이다. 전조 증상이 없어 시력 상실 직전까지도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침묵의 살인자’ 녹내장 때문이다. 근시가 심해 어릴 때부터 두꺼운 안경을 써온 터라 시력 저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화근이었다.
최태근(사진) 메디웨일 대표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몸소 증명해냈다. 20대에 갑작스럽게 녹내장 진단을 받아 시력을 잃을 뻔한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자신처럼 뒤늦게 병을 발견하는 환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녹내장을 진단해준 의사와 의기투합했다. 1분 망막 촬영만으로 녹내장은 물론 심근경색·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까지 예측하는 AI 소프트웨어 ‘닥터눈 CVD’는 이렇게 탄생했다.
11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최 대표는 인터뷰 직전까지 사무실 곳곳을 숨가쁘게 뛰어다니며 직원들과 소통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1990년대생’ 최고경영자(CEO) 답게 자리에서 기다리기보다 먼저 찾아가는 스타일이다. 그는 “가끔은 바보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다”며 인터뷰 내내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녹내장 환자로서 망막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창업의 시발점이었다. 망막은 인체에서 동맥·모세혈관·정맥 등 다양한 혈관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최 대표는 “망막의 정교한 혈관 네트워크는 심장·뇌·신장 등 주요 장기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각종 질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며 “녹내장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도 서서히 진행되다 갑자기 생명을 앗아가는 만큼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위험도를 파악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구글이 망막 이미지를 활용한 질병 예방·관리에 대한 특허와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망막과 전신 질환의 연관성이 그만큼 높은 사업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뜻 두려움조차 모르는 ‘강철 인간’처럼 보이지만 10년 전 녹내장 진단은 그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다만 두려움 한 편에는 창업에 대한 설렘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어제보다 더 안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한동안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면서도 “밤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잠들었다”며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녹내장 진단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지만 사실 창업은 그에게 예견된 수순이었다. 과학고와 공대를 거치며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좋아하던 ‘전형적인’ 공대생인 최 대표의 주된 관심사는 ‘기술의 쓰임’이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공대에서 배운 것들을 어떻게 세상에 전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창업은 빠르게 현실이 됐다. 최 대표는 자신에게 녹내장을 진단해준 임형택 전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와 함께 회사를 세웠다. 혈기 넘치는 20대 청년이 추진력을 발휘했다면 임 전 교수는 학술적 기반을 채워줬다. 임 전 교수는 현재 메디웨일의 최고의학책임자(CMO)로 함께하고 있다.
환자로서의 정체성은 최 대표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의사들이 찾는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강점으로 작용했다. 닥터눈은 심혈관 질환 발생 가능성을 0~100점으로 수치화해 저위험군부터 고위험군까지 단계별 위험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질환 발생 가능성을 숫자로 직접 확인하며 건강 상태를 꾸준히 점검할 수 있다. 최 대표는 “5년 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높게 나타날 경우 고지혈증약이나 당뇨약을 조기에 복용해 질병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 방식도 간단해 환자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대학병원에서 긴 대기 끝에 컴퓨터단층촬영(CT)을 찍어야 했던 최 대표 자신의 경험이 낳은 결과물이다. 최 대표는 “CT나 초음파 장비 없이 안저카메라만 있으면 검사가 가능해 동네 병원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AI 기술이다. 닥터눈은 망막에 나타나는 미세한 혈관 변화를 AI로 분석해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도를 수치화한다. 최 대표는 “망막으로 심혈관 질환을 예측할 수 있다는 개념은 학술적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돼왔지만 실제 의료기기로 인증받아 병원에 공급되는 것은 메디웨일이 세계 최초”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닥터눈의 정확도를 심장 CT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최 대표는 “대부분의 성인이 매년 망막 촬영을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고 당뇨병 환자들도 주기적으로 안과 검사를 받는 만큼 한국의 풍부한 의료 데이터를 AI와 접목하면 충분히 사업화가 가능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닥터눈은 현재 심장내과에서 가장 정확한 예측 검사로 꼽히는 심장 CT 기반 관상동맥 석회화지수에 준하는 예측 성능을 갖추게 됐다.
메디웨일은 지난해 말 닥터눈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드 노보(De Novo) 승인 신청을 했다. 드 노보는 라틴어로 ‘새로운’이라는 뜻으로 기존에 없던 혁신 의료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해 최초 승인을 부여하는 인증 트랙이다. 메디웨일은 국내 의료 AI 업계에서 처음으로 이 트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 대표는 “기존 의료기기와 동등성을 입증하는 510K 트랙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혁신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세계 최초 기술이다 보니 안과·심장내과 등 어느 진료과에서 심사를 맡아야 하는지부터 논의가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드 노보 승인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근거는 임상 데이터의 양과 질이다. 그는 “현재 국내외에서 약 230만 장 규모의 망막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인종·연령 등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해 AI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안에 승인 결과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현지 영업망을 구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 대표가 그리는 메디웨일의 미래는 망막 검사 한 번으로 다양한 질환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환자 관리 플랫폼’ 기업이다. 현재 메디웨일은 심혈관 질환뿐 아니라 콩팥 질환 등 대사증후군 관련 질환 전반으로 플랫폼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만성 콩팥 질환 예측 솔루션인 ‘닥터눈 CKD’는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최 대표는 “대사증후군 환자들이 주로 겪는 질환이 심혈관·눈·콩팥 문제인 만큼 우선 이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간과 뇌 질환까지 예측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30대 중반의 젊은 CEO인 최 대표가 스스로 꼽은 강점은 무엇일까. 자칫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바로 ‘자기 객관화 능력’이다. 최 대표는 “경험도 부족하고 특정 분야의 전문성도 모자란 게 단점이지만 그 점을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며 “대표는 ‘내가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런 생각을 버리고 전문가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며 직원들과 끊임없이 논의하려 노력한다”며 미소 지었다.
메디웨일은 2016년 회사 설립 이후 올해로 10년 차를 맞았다. 최 대표는 “메디웨일이 의료 AI 기업이지만 궁극적으로 AI라는 키워드를 빼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AI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단계를 꿈꾼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에서 시작된 기술이 글로벌 의료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He is… △1992년 서울 △한성과학고 △포항공대(포스텍) 산업공학과 △2016년 메디웨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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