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넌 청진기, 버선 속 독립선언서…강원에 남은 ‘선교 발자취’
교회총연합 기독교 근대유산 탐방기
김일성 별장 알려진 ‘화진포의 성’
결핵퇴치 앞장선 셔우드 홀의 수련원
“조선과 함께 뛴 심장” 애정 고스란히
원주세브란스엔 모리스 선교사 사택
조화벽이 개성서 숨겨온 독립선언서
영동 최대규모 양양 만세운동 불씨로
입력2026-03-11 17:42
수정2026-03-11 23:51
지면 27면
강원도 고성 화진포 옆 언덕 위에는 유럽의 작은 성을 연상케 하는 2층 벽돌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이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지로 찾아 ‘김일성 별장’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건물이다. 1938년 캐나다 출신 미국 감리회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1893~1991)이 선교사 휴양시설로 지은 ‘화진포의 성’이다. 당시 일제가 원산 해변에 있던 선교사 수련원을 강제 철거하면서 셔우드 홀은 화진포에 선교사 휴양시설을 새로 건립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Seal)을 발행하는 등 조선의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한국교회총연합은 9~10일 강원지역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탐방을 진행했다. 험준한 산악 지형에 가로막힌 강원도는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복음 전파가 가장 늦은 지역이지만 선교사들은 근대 의료와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평생을 헌신했다.
‘화진포의 성’ 인근에는 셔우드 홀과 그의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을 기리는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에는 2대에 걸쳐 한국 의료사에 족적을 남긴 선교사 가족의 편지와 사진, 최초의 한국 크리스마스 실 등이 전시돼 있다. 셔우드 홀의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은 평양에 여성 치료소와 국내 첫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했고,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 전염병에 걸려 숨졌다.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결핵 퇴치에 헌신하기로 한 셔우드 홀은 1928년 한국 최초의 근대 결핵요양원을 설립했고 1932년에는 결핵 치료 재원 마련을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스파이 혐의로 추방됐으며 사후 유언에 따라 화장돼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을 정도로 조선을 깊이 사랑했다. 셔우드 홀은 “나의 청진기로 조선 사람들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내 심장도 조선과 함께 뛴다”며 조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정석 한교총 대표회장은 “홀 선교사 가족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됐던 여성과 시각장애인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나라에서 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면서 “개신교 역사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 소중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도 의료 선교의 발자취가 담긴 근대 문화유산이 있다. 병원의 모체인 서미감병원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붉은 벽돌집 ‘모리스 선교사 사택’이다. 서미감병원은 미국북감리회와 스웨덴감리교회가 조선 선교 25주년을 기념해 1923년 원주에 설립했다. 스웨덴의 ‘서(瑞)’, 미국의 ‘미(美)’, 감리교의 ‘감(監)’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모리스 선교사 사택’은 당시 의료 선교사들의 숙소로 쓰였고 현재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일산사료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미감병원은 한국전쟁 후 원주연합기독병원을 거쳐 현재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기독교는 강원 지역의 독립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동지역 최대 규모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양양군 현북면 만세고개에는 ‘3·1 만세운동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3·1운동 한 달 뒤인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양양 만세운동에는 연인원 1만 5000여 명이 참여했고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양양 만세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유관순 열사의 올케이기도 한 조화벽(1895~1975)이다. 양양감리교회 조영순 전도사의 딸인 조화벽은 개성 호수돈여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양양으로 왔다. 그가 버선 속에 숨겨 온 독립선언서를 양양의 교회 청년들에게 전달한 게 양양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교회사 박사인 홍승표 아펜젤러 인우교회 목사는 “양양 만세운동은 지역 내 4개 교회가 중심이 돼 지역 유지인 유림들과 연대해 전개했다는 특징이 있다”며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에 고무돼 지역민들의 결속력과 파급력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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