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담대한 자사주 소각…경영권 방어책 마련 시급
입력2026-03-12 00:02
수정2026-03-12 00:02
지면 31면
삼성전자가 16조 원, SK㈜가 5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보유 자사주의 82.5%를 소각하고 SK㈜는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한다. 당정이 추진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3차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 기업이 적극 화답한 모양새다. 지난달 25일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10일까지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기업은 48곳, 규모만 6조 9970억 원에 달한다. 6일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안은 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자사주는 지금까지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족한 우리 기업들에 사실상 유일한 안전판 역할을 해 왔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상황에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경영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2003년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트라우마가 있는 SK㈜까지 자사주 전량 소각을 결정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재계의 이런 적극적 호응에도 M&A로 인한 의도치 않은 자사주 취득이나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예외 인정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최근 ‘편법·꼼수’라는 지적에도 일부 기업들이 자사주 사수에 매달리는 것도 경영권 위협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상법 개정 이후 첫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들은 대응 전략 마련에 몹시 분주하다. 7월부터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고 9월부터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며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규정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라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제도 변화다.
이미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주 제안을 통해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주주에게 상법 개정이라는 ‘창’을 줬다면 기업에는 경영권 방어의 ‘방패’를 마련해줘야 한다.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합리적 방어 수단의 제도화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자사주 처분 의무가 강화된 만큼 신주 발행 여건도 개선해야 한다. 자본시장을 통해 생산적 투자와 성장 자금의 유입을 확대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