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에게 ‘농사를 포기할 자유’를 허하라
소유의 낡은 족쇄에서 활용의 가치로
현실과 동떨어진 ‘경자유전’의 역설
투기 잡으려다 농업 미래까지 잡을수도
‘농업=보존’ 좁은 관점 벗어나 혁신해야
입력2026-03-12 06:01
수정2026-03-12 06:01
지면 30면
김현수
논설위원
농사는 ‘짓는다’고 한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며 기르는 시간이 경작과 경영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농지 정책은 땅을 실제 일구는 경영 활동보다 땅을 소유하는 ‘지주’ 중심의 논리에 갇혀 있다. 이제는 농지라는 자원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소유의 문제를 넘어 땅을 어떻게 활용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실질적 대안으로 논의의 중심을 옮겨야 할 때다.
이재명 대통령의 투기 농지 매각 발언이 파장을 키우며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우리 사회의 농지에 대한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여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는 ‘땅 부잣집 도련님’으로 불리고 청와대 행정관에게는 농지 쪼개기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어찌 됐든 이번 발언은 향후 정부·국회에서 농지 제도 개편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헌법 121조 1항에 명시돼 있다. 1987년 헌법에 처음 등장했지만 그 정신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 이미 드러났다.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원칙이다. 1949년 당시 농림부 장관이던 조봉암이 추진한 ‘유상몰수·유상분배’ 농지개혁도 이 원칙에 기반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땅에 농사를 짓는 농민은 절반이 채 안 된다. 임차농이 47%이고 농지의 절반가량은 비농업인이 소유하고 있다. 헌법 121조 2항이 임대차와 위탁 경영을 인정하고 있고 1996년 제정된 농지법은 영농조합과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도 허용한다. 결국 전체 농지의 절반 정도가 경자유전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 셈이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경자유전 원칙이 다시 소환된 이유는 땅값이다. “땅값이 다 올라 시골 야산도 만 원짜리가 없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정부 수립 이후 첫 농지 전수조사와 투기 토지 강제 매각 검토 지시로 이어졌다. 농지 가격이 높은 것은 분명 문제다. 귀농하려는 청년이나 규모를 확대하려는 전업농에게는 진입장벽이 된다. 서울에서 400㎞ 떨어진 농촌 마을도 지방 국도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밭 1평(3.3㎡)에 30만 원을 넘는 곳이 적지 않다. 농지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국 농지 평균 가격은 1㎡당 4만 2314원이다. 농가 소득이 연평균 5000만 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농지를 보유한 농민들의 시각은 다르다. 농지는 잘 오르지도, 잘 팔리지도 않는 자산이다. 도시와 달리 개발 가능성과 거래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전국 지가지수는 31.9% 상승했지만 군 단위 지역 농지는 17.1% 오르는 데 그쳤다. 거래 자체가 거의 없어 사실상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곳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 매각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현행법상 조사 후 처분 대상이라 해도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즉각 처분할 수 없다. 설령 매물로 나와도 가격 부담 때문에 전업농이 사기란 어렵다.
투기 수요가 귀농과 농촌 인구 유입을 막는다는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하지만 해결책이 경자유전 원칙의 재강조일 필요는 없다. 농지가 실제 농업에 이용되도록 만드는 현실적인 제도가 더 중요하다.
농촌 현장에서는 고령 농민이 임대차 계약 없이 직불금은 받으면서 농지를 빌려주는 일이 흔하다. 전수조사를 한다고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규제에 대한 반발만 키울 수 있다. 농지 장기 보유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임대차 관리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농지 투기의 근본 원인은 경자유전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수많은 예외 조항을 만들어온 제도 구조에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의 꼼수까지 더해지면서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됐다. 이제는 소유보다 활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본은 2014년 농지법을 개정해 비농업 기업도 농지를 임대할 수 있도록 했다. 유휴 농지를 매입하거나 임대해 영농 기업에 재배분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그 결과 영농 기업의 경작 면적은 두 배로 늘었고 청년 농업인도 증가했다. 농촌 고령화율 역시 한국보다 낮다.
농업도 산업이다. 농지는 단순히 보존할 대상이 아니다. 이번 농지 전수조사가 투기나 불법을 적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의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데이터가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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