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기업이 주소를 옮기는 이유
■테크성장부 김예솔 기자
입력2026-03-11 18:11
지면 30면회생에 성공한 기업들의 현재를 추적하기 위해 법인 등기부등본을 살폈다. 눈에 띄는 것은 잦은 주소 변경이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다시 다른 지역으로 자리를 옮긴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네다섯 번 주소를 바꾼 기업도 있었다.
잦은 이전은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쓴 흔적이다. 대부분 기업은 이사를 하면서 사무실이나 공장 규모를 줄인다. 임대료를 낮추고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회생 절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의 수순이다.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로 몸집을 줄이는 것이다.
기업이 회생을 신청하면 법원은 절차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이후 채권자들의 동의를 거쳐 회생 인가 여부가 결정되고 기업이 제출한 회생 계획을 이행하면 비로소 회생 ‘졸업’이 가능하다. 이 과정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이 걸리는 지난한 시간이다. 이 기간을 버텨서 졸업하는 기업은 전체 신청 기업의 10%대에 불과하다.
좁은 문을 뚫고 회생을 마친 기업 앞에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한 번 회생 절차를 밟은 기업에는 금융권의 문턱이 높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간 금융은 막히고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도 제한된다. 자금줄이 막힌 기업은 결국 다시 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회생 절차를 거친 기업인들이 “차라리 파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패는 기업의 자산”이라며 기업들이 재기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패는 여전히 낙인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해 사무실과 공장을 줄이고 몇 번씩 주소를 옮겨 다닌 기업들도 재기 과정에서 좌절하고 낙마한다.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막혀 있는 금융의 연결고리를 복원하고 재도전 기업들의 성장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회생 기업이 자금 지원과 보증을 거쳐 투자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금융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제도를 보완할 때 기업들이 더 이상 주소를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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