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물어뜯는 고통” 매일 밤 울던 다섯살, 웃음 되찾았다
■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담즙산 배출 안되는 희귀 간질환
‘알라질 증후군’ 국내 환자 136명뿐
개미 수천마리 물어뜯는 고통·가려움
뇌사자 간이식 대기중 리브말리 처방
투여 6개월만에 담즙산 40배서 정상
올해 1월 건보 적용…부담 10%로 ↓
입력2026-03-13 14:01
수정2026-03-13 23:39
지면 19면
“증상이 나타난 이후 단 하루도 아이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없어요. 온 몸을 긁어대니 얼굴과 귀엔 늘 피딱지가 가득했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항상 기력이 없었습니다. 이토록 잘 웃고 장난기 많은 아이인 줄 처음 알았어요. ”
13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외래 진료실에서 만난 연지(5·가명) 양의 엄마는 ”기적과도 같은 약이 우리 가족의 삶을 180도 바꿔놨다“며 눈물을 훔쳤다.
연지는 심장에서 전신으로 피를 보내는 가장 큰 혈관(대동맥)의 일부가 좁아지는 등 복잡 심기형을 갖고 태어나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심장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한숨 돌리려던 찰나, 간·담도계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황달 증상이 2주 넘게 지속돼 혈액검사를 진행해 보니 직접 빌리루빈 수치와 담즙산 농도가 정상 범위의 수십 배나 됐다. 주치의인 오석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만나고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았다. 특정 유전자 변이로 인해 간내 담도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는 ‘알라질 증후군(Alagille Syndrome)’이 원인이었던 것. 알라질 증후군은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진단된 환자가 136명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 병이다. 과거에는 신생아 7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됐으나, 유전학적 진단이 활발해지면서 3만 명당 1명 수준까지 늘었다. 알라질 증후군 환자들은 대부분 생후 3개월 이내에 황달과 담즙 정체, 그로 인한 가려움증과 진행성 간부전의 형태로 증상이 발현된다. 담즙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통로인 담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담즙이 간에서 배출되지 못하고 정체되는 탓이다. 축적된 담즙산은 간세포를 손상시켜 간경화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말초신경계를 자극해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전체 환자의 95%가량은 간 뿐 아니라 심장의 기형을 동반하며 그보다 낮은 빈도로 골격계, 안구, 안면 등 주요 장기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 교수는 “독한 세제가 간 속에 만성적으로 축적되는 격“이라며 “환자들은 수천 마리의 개미가 몸을 기어 다니며 따끔따끔하게 물어뜯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말초신경계의 가려움 수용 감각신경섬유를 자극하면서 가려움증과 통증이 발생하는데, 그 증상이 어찌나 심한지 대다수 환자들이 ‘수면 박탈’을 경험한다.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아이의 성장 발달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 보채는 아이를 돌보느라, 부모들도 수면장애를 겪게 마련이다.
그동안 알라질 증후군 치료의 종착역은 늘 ‘간이식’이었다. 대사 물질의 담즙 배출을 돕는 이담제나 간효소 유도제, 담즙산 결합제 등 여러 약제가 동원됐지만 임상적 효과는 미미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밤새 온몸을 긁으며 울어대는 아이를 지켜보는 지옥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보호자가 ‘차라리 간이식을 해달라’며 나가떨어지곤 한다“며 ”상태가 심해지면 아이를 입원시켜 마약성 수면제로 재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의사 입장에서도 무력감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 소아 알라질 증후군 환자의 약 40%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지 양의 경우 마약성 수면제도 소용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 2023년부터 뇌사자 간이식을 대기하던 상황이었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연지네 가족의 삶은 지난해 9월 ‘리브말리액(성분명 마라릭시뱃)’를 처방받으며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리브말리는 3개월 이상의 알라질 증후군 환자의 담즙정체성 소양증에 허가된 회장 담즙산 수송체(IBAT) 억제제다. 액상 제형으로 매일 아침 시가 30분 전에 복용하면 소장 말단에서 담즙산이 간으로 재흡수되는 것을 막고 대변을 통한 배출을 증가시킨다. 국제학술지 란셋에 발표된 임상 연구에 따르면 리브말리 복용 18주차에 80% 이상의 환자에서 담즙산 수치와 가려움증이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또 6년에 걸친 장기 추적한 결과 리브말리 치료군에서 간의 보상기전 상실, 간이식, 사망 등의 위험이 70% 가까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비싼 약값은 허들이었다. 해외에서 리브말리는 한병당 3000만 원 수준으로, 체중에 따라 한해 약값만 1억~2억 원가량 소요됐다.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직접 신약을 들여올 방법을 알아보던 부모들은 대부분 천문학격 가격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연지는 제약사의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돼 선제적으로 투여할 기회를 얻었고, 40배 가까이 뛰었던 담즙산 농도는 6개월 여만에 정상 수준에 가까워졌다. 가려움증도 개선돼 수면박탈 상황에서 벗어났고, 간이식이 불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더욱 반가운 건 리브말리가 올해 1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되며 본인 부담금이 대폭 낮아졌다는 점이다. 국내 약값은 병당 2900만 원 상당인데 급여 기준에 적합한 경우 산정특례로 약값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희귀질환의료비 지원 제도를 통해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지원도 가능하다. 오 교수는 “이식만이 유일한 정답이었던 알라질 증후군 치료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꾼 게임 체인저가 등장했다”며 “초기에 담즙산 수치를 조절할수록 간손상을 최소화하고 이식을 막을 확률이 높아지므로 의심 환자들을 조기에 발굴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간단한 혈액검사로 직접 빌리루빈 수치만 확인해도 간이식을 막지 않을 수 있다”며 “아이의 눈이나 피부가 노란 황달 증세가 2주를 넘겼다면 반드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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