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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셧다운 막아라…K정유, 초유의 ‘유조선 확보 전쟁’

에쓰오일, 하루 55만弗 긴급 용선

SK에너지도 대체 선박 고가 계약

우회항로·유조선 수요급증에 비상

석화사는 ‘불가항력’ 도미노 위기

해협 봉쇄 장기화 우려한 아람코

亞고객에 물량신청 플랜B 요구도

입력2026-03-13 17:44

수정2026-03-13 23:34

지면 11면

호르무즈해협 봉쇄 장기화로 원유 운송에 차질이 커지자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정유사들이 대체 물량 확보를 위해 고가의 용선료를 감수하며 선박 확보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정유사들의 원유 공급이 적시에 이뤄져야 휘발유·경유 등 제품 공급은 물론 석유화학업체의 나프타 등 원료 확보가 원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최근 그리스 선사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긴급 용선했다. 다른 정유사가 까다로운 조건에 계약을 철회하자 즉시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용선료는 55만 5000달러로 45일 계약 기준 총 2500만 달러(약 370억 원)에 달한다.

해당 선박의 선적지는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항구 얀부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대체 수송로로 부상한 곳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평소 월 10척가량의 도입 물량 중 1척 정도가 얀부항을 이용해왔으나 최근 중동 상황이 악화돼 거래처와 얀부항 이용 비중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SK에너지도 최근 노르웨이 선사와 최신 VLCC 용선 계약을 진행 중이다. 하루 40만 달러 이상씩 50여 일간 2100만 달러를 지급할 예정이다. 현재 이 선박은 싱가포르를 출발해 인도양을 항해 중인데 선적지는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사우디 얀부로 추정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 원유를 싣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홍해로 이동해 얀부로 향하는 유조선이 늘었다.

상황은 다른 정유사들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은 70%에 육박했는데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봉쇄돼 사태 장기화 시 국내 산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에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 긴급 조달을 위해 약 400억 원을 긴급 용선에 투입했고 GS칼텍스도 비상 체제를 가동하며 대체 선박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회 항로 수요가 폭증한 데다 홍해 항로 역시 안전 이슈가 부상해 선주들이 요구하는 계약 조건이 까다롭다”며 “막판에 계약이 깨지는 사례가 빈번해 배를 구하는 것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전했다. 여기에 사우디 국영 선사가 얀부 선적용 유조선이 부족하자 VLCC를 대거 용선하고 있어 가용 선박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정유업계의 위기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국적 유조선 7척이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발이 묶이면서 정유사로부터 나프타를 공급받아 에틸렌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가동을 중단할 경우 오히려 재개 때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가동률 하향으로 재고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급 차질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석화업체들은 책임을 최소화하려 거래처에 ‘불가항력’ 및 그 가능성을 잇따라 통지하고 있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한 여천NCC가 이미 공급 차질을 선언했고 롯데케미칼과 LG화학·한화솔루션도 거래처에 불가항력 가능성을 공지했다. 불가항력 선언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공급 의무를 일시적으로 면제받기 위해 취하는 조치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사우디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정기 구매사들에 4월 인도분 원유에 대한 ‘백업 계획’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협 봉쇄가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홍해 얀부항에서 공급할 원유 물량을 신청하면서 해협 통행 재개를 대비한 기존 걸프만의 라스타누라항 선적 물량도 신청하라는 의미다. 이는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불투명해지자 아람코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받아보고 원유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아람코의 이례적인 이중 플랜 요청에 제출 기한도 연장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 정유사들은 통상 아람코의 공식 판매가 발표 후 단일 계획을 제출하고 매월 10일 전 배분 물량을 통보받았으나 이번 달에는 물량 신청 마감일이 13일까지 밀렸다. 항로와 선적 일정이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를 고려하면서 준비 시간이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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