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통행증’ 쥔 이란, ‘군함’ 꺼낸 트럼프…석유 한 방울에 갈라진 지구촌
프랑스·이탈리아, 이란 대화 시도
터키·인도 협상으로 선박 무사 통과
대체 항로는 비싸고 느려 어려움 따라
트럼프, 동맹국과 중국에 ‘함선 파견’ 요구
입력2026-03-15 09:34
수정2026-03-15 14:15
이란이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면서 에너지 부족에 직면한 국가들이 하나둘씩 이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 함선 파견을 요구하면서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는 자국 선박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이란 측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당 협상이 진전되거나 이란 측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구이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은 이날 현지 매체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이 단일하고 통합된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두 가지 핵심 사항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첫째는 전쟁 중이 아닌 국가의 선박이 호르무즈를 통과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운 회사들은 서방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FT는 전했다.
꽉 막힌 호르무즈 해법 ①테헤란과 협상하기
이처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이란에 접촉하는 국가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터키는 빠르게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국가 중 하나다. 압둘카디르 우랄로글루 터키 교통부 장관은 이날 양국의 외교적 접촉 이후 터키 소유의 벌크선 한 척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로자나’라는 이름의 선박은 이전에 이란 항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배로 알려졌다.
인도도 액화석유가스(LPG) 수송선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라제슈 쿠마르 신하 인도 항만해운수로부 특별비서관은 14일(현지 시간) LPG 수송선 시발릭호와 난디 데비호가 전날 밤 늦게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했다고 밝혔다. 페르시아만에는 24척의 인도 국적 선박이 있었다. 인도 정부는 이들 선박을 제외한 나머지 22척에 대해서도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인도는 이란과 끈질긴 협상을 이어간 국가로 평가된다. 전쟁 발발 후 수브라마냠 자이샹카르 외교부 장관이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4차례 넘게 회담을 진행한 데 이어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인도 선박의 이동을 논의했다. 중국도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몇몇 배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은 방글라데시 국기를 단 선박의 해협 통과를 허용하기로 합의했고, 사우디아라비아산 석유를 실은 라이베리아 국적 선박에도 이번주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승인받은 국가들은 중립국이거나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국가들이다. 터키 선박의 경우 이란 항구를 이용한 경험이 있어 이란 측이 앞서 자국 항구를 이용한 배들을 선별하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중 80% 이상이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만큼, 특히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 테헤란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란과의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 동맹국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인 상황이다.
② 대체 항로를 모색하거나 러시아 원유 수입하기
대체 항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글로벌 선사들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는 항로를 고려 중이지만, 항해 거리가 3500~4000해리(약 6482~7408㎞) 가량 늘어나기 때문에 10~14일의 항해일수가 더해지는 한계가 있다. 항해가 길어지는 만큼 연료 소비량이 늘고 각종 물류의 체류 기간도 연장된다. 보험료도 인상된다. 비싸고 느린 만큼 전면적인 우회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우회도 있다.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원유 송유관(ADCOP) 등이 거론된다. CNBC에 따르면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은 일일 700만 배럴, UAE 아부다비 원유 송유관은 일일 180만 배럴가량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빈 다스 케이플러(Kpler) 수석 석유 분석가는 “UAE 파이프라인은 현재 71%의 가동률을 보여 약 일일 44만 배럴의 여유량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일 2000만 배럴을 처리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비해서는 파이프라인의 처리량이 부족하다. 이란이 걸프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는 만큼 안정성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산 원유도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 재무부는 12일(현지 시간) 현재 해상에서 운송 중인 러시아산 원유·석유 제품에 대해 4월 11일까지 해외 판매를 승인하는 면허를 발급했다.
러시아 원유 판매는 대부분 중국과 인도가 소화할 전망이다. 케이플러는 현재 80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가 운송 중이며, 이 중 3100만 배럴은 인도로, 3000만 배럴은 중국으로 향할 것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제재를 주도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조치에 즉각 반발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일방적으로 해제한 것은 유럽 안보에 영향을 미치기에 매우 우려스럽다”고 발표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잘못된 결정”이라고 전했다. 유럽이 전면적으로 반발하는 만큼 러시아 원유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함선 파견까지 요구…함선 파견이냐, 대화냐
각국의 에너지 우려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인위적인 제약으로 영향을 받는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및 기타 국가들이 해당 지역에 함선을 파견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각국은 그 해협을 관리해야 하며 미국은 이를 위해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호위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동맹국과 중국에 공개적으로 호위 요구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아닌 제3국에 대(對)이란 군사작전 동참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난제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미국과의 동맹이 강화되는 이점이 있지만, 관련 군사작전에 공식 참여하게 될 시 이란과의 관계 악화 등 어려움이 예상된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청해부대를 독자적으로 파견하는 전략을 내세운 바 있다.
황당한 ‘트럼프식’ 퇴장, 그런데 종료 버튼은 이란이 쥐고 있다?
천하의 미국도 장악 못하는 호르무즈 해협, 이유는?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