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경쟁 시대, 한국만 브레이크
노현섭 테크성장부 차장
입력2026-03-15 23:48
지면 29면
지난해 11월 정부는 ‘자율주행차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으며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 격차를 수치로 제시했다. 구글 웨이모는 누적 실증 거리가 1억 6000만 ㎞를 돌파했고 중국의 바이두 역시 누적 1억 ㎞를 넘어섰다. 한국은 자율주행 기업 전체 주행거리를 모두 합쳐도 1306만 ㎞에 그친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냉혹했다. 웨이모는 지난달 중순 3억 2200만 ㎞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웨이모가 1억 6000만 ㎞를 돌파한 것이 지난해 7월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6개월여 만에 주행거리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자율주행 경쟁의 핵심은 결국 데이터와 실증 경험이다. 더 많은 차량이 더 많은 도로를 달릴수록 알고리즘은 고도화하고 서비스는 빠르게 상용화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플랫폼 기업,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대규모 실증을 이어가는 이유다. 실제 이를 기반으로 웨이모는 미국 전역은 물론 영국과 일본 등으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우버도 일본 자동차 제조사 닛산과 올해 도쿄에서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대규모 자본과 수많은 실증을 바탕으로 국가 간 경계를 넘어 합종연횡이 이뤄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한국 사업을 위한 기반을 만들고 있다. 우버는 오랜 기간 한국에서 택시 가맹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글은 국내 자율주행의 핵심 기반이 될 고정밀 지도 반출을 허용받았다. 웨이모가 한국 지형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면서 언제든 시장 진입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운송 플랫폼의 호출 건수, 배차 시간 등 핵심 영업 데이터를 정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이 최근 발의됐고 5월부터 택시 플랫폼을 겨냥한 ‘배회 영업 수수료 부과 금지법’도 시행된다. 지도 반출 허용 등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열어주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자율주행 경쟁력을 죽이는 법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규율과 이용자 보호는 필요하다. 하지만 혁신의 속도를 억누르는 규제는 결국 국내 경쟁력만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타다’를 통해 경험했다. 자율주행은 단순한 교통 서비스가 아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AI), 플랫폼이 결합한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실증을 바탕으로 시장을 넓혀가는 지금, 국내 기업들이 마음껏 실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술 주권을 지키는 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도로 위에서 데이터를 쌓는 동안 우리는 국회에서 규제만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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