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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걸프전, 하나의 교훈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목표 두서없고 수단 고려도 없는 이란전

앞선 두 걸프전 정책적 성공과는 딴판

美 전략적으론 이미 지고 있는 것일수도

입력2026-03-17 07:30

수정2026-03-17 07:30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매년 봄학기에 개설하는 ‘안보학 개론’은 언제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으로 시작한다. 군사전략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정책)의 연속이다.” 클라우제비츠의 명구인데 전략의 개념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담아낸 문장은 찾기 어렵다. 전략적이라는 것은 결국 ‘목표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일국이 타국과의 관계에서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교를 선택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다양한 정책 수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 목표다. 명확한 정책 목표가 전쟁의 계획과 수행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군사적으로는 승리하고도 정치적·정책적으로는 패배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번 이란 전쟁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세 차례의 걸프전을 치른 셈이다. 첫 번째 걸프전은 1991년 이라크를 상대로 미국이 주도한 전쟁이었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웰은 이른바 ‘파웰 독트린’으로 불리는 전쟁의 전략적 틀을 제시했다. 첫째, 전쟁에 앞서 정책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충분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야 하며 둘째, 일단 전쟁에 돌입하면 목표 달성에 적합한 군사력을 압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정책 목표의 명확성, 국민적 지지의 중요성, 그리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군사수단의 문제 등에 있어서 파웰 독트린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현대적으로 재현한 사례였다. 실제로 파웰은 ‘전쟁론’을 읽고 “과거에서 날아온 한 줄기 빛이 오늘날의 군사적 난제를 비추는 것 같았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당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대통령은 쿠웨이트를 전격 합병한 이라크로부터 쿠웨이트의 영토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전쟁의 정책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쉽게 전개되자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빠르게 비등했다. 그러나 쿠웨이트의 영토주권이 회복된 시점에서 부시는 전쟁을 중단했다. 후세인 제거 자체는 군사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지만, 그럴 경우 이라크와 경쟁 관계에 있던 이란이 지역 패권국가로 부상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충분한 국민적 지지 확보를 위해 홍보회사까지 고용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은 공중전으로 시작됐지만, 전쟁 목표는 압도적인 지상군 투입을 통해 달성됐다.

조지 W. 부시(아들) 대통령은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정책 목표로 이라크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시는 이라크를 민주화함으로써 중동 전반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테러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9·11 테러를 경험한 미국 내에는 전쟁을 뒷받침할 충분한 국민적 지지가 형성돼 있었고, 부시는 의회로부터 전쟁지원결의안을 이끌어내며 정당성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공중전 이후 지상군이 투입됐고, 불과 몇 주 만에 사담 후세인 정권은 붕괴됐다. 그러나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까지는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민주화라는 정책 목표는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테러 근절이 목표였다면 전쟁 동안 테러 행위가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통계도 없다. 전쟁 이후에는 아버지 부시가 우려했던 대로, 이란이 역내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이라크 전쟁 개시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웰이 부시 대통령에게 했던 말은 유명하다. “도자기를 깨뜨리면, 그 책임은 깨뜨린 사람이 져야 한다(You break it, you own it).” 이른바 ‘도자기 공장 법칙(pottery barn rule)’이다. 전쟁을 통해 기존 체제를 무너뜨릴 경우, 그 이후의 혼란과 재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였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재건을 위해 일정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오늘날 이라크는 최소한 형식적·절차적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대국민 설득 작업 없이 3차 걸프전을 시작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성은 이랬다. “정권 교체의 기회를 만들었으니, 이란 국민이여 봉기해 이를 쟁취하라.” 체제를 ‘깨뜨리는’ 데까지는 개입하면서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국민에게 그 이후의 책임을 떠넘긴 발언이었다.

이후 신중동 질서 구축, ‘임박한’ 위협 제거, 핵 능력의 완전한 불능화 등 목표들이 두서없이 나열됐을 뿐,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았다.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했다가 필요하면 가능하다고 말을 바꿨고, 쿠르드 세력 활용 역시 하겠다고 했다가 부인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이는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수단을 선택하는 전략적 행동이라기보다는, 일단 총을 쏘고 나서 과녁을 찾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접근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전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민을 대량 살상한 이란의 신정체제는 사라져야 하며, 이들이 핵무기를 손에 넣는 사태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책 목표라면, 현재와 같은 공중전 중심의 군사적 접근만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정권의 근본적 약화나 전복을 목표로 한다면, 이란 시민사회의 저항 역량을 실질적으로 제고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비군사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단순한 군사적 타격은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이란 핵 문제에 ‘좋은 해법’이란 없고, 선택지는 늘 나쁜 방안과 덜 나쁜 방안 사이에 놓여 있다. 이란과의 핵 합의가 ‘스위스 치즈 같은 구멍투성이’였지만, 공습보다는 여전히 ‘덜 나쁜’ 선택지다. 이란 핵 문제는 핵 협상과 강압외교, 제재를 병행하며 핵 능력을 최대한 제한하는 것 외에 현실적인 대안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번 공중전 이후 이란의 시민운동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고, 신정체제는 더 강경해질 것이다.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강화되고, 미국은 그 집착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만약 이란 전쟁의 정책 목표가 신정체제의 붕괴와 핵 능력의 제거였다면 미국은 일정한 군사적·전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전략적 차원에서는 이미 이 전쟁에 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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