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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하는 새로운 좌표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입력2026-03-16 11:06

임병식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한일 관계를 묘사한 AI 이미지.
한일 관계를 묘사한 AI 이미지.

일본은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을까. 최근 2년여 동안 제국주의 시절 과거사 현장을 다니며 줄곧 이 질문을 붙들었다. 현장에서 새삼 확인한 것은 일본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인식이다. 조선인 강제 동원도, 위안부도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켰고 식민지 지배 동안 조선은 근대화됐다는 논리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태평양전쟁조차 동아시아 발전을 위한 ‘대동아 전쟁’으로 미화한다.

이 같은 정서는 일부 의견이 아니라 일본 주류 정치인과 우익 세력이 공유하는 신념에 가깝다. 일본 정부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꾸고, 2021년부터는 교과서에서 ‘강제’라는 용어마저 삭제했다. 군마현은 2024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끝내 철거했다. 이런 흐름은 아베 정부 이후 확산된 ‘강한 일본’, 그리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라는 국가관과 맞닿아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한 강연에서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두 나라 밑바닥 정서를 집약한 통찰이다. 일본 사회는 집단의 조화를 뜻하는 ‘와(和)’를 중시하며 그 질서를 흔드는 행동을 ‘메이와쿠(迷惑)’로 규정한다. 강제 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은 일본 내부에서는 불편한 행위로 인식한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믿는 이들에게 한국의 사과 요구는 단지 ‘메이와쿠’일 뿐이다.

이 같은 왜곡된 정서에 맞서려면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좌표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식민지 조선도, 1960년대의 가난한 개발도상국도 아니다. 많은 지표에서 이미 일본을 앞섰다. 반도체와 조선, 가전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대기업 신입 사원 연봉도 일본보다 높다. K팝과 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는 일본 젊은 세대의 일상 문화가 됐다.

문제는 우리 인식도 그만큼 성숙했는가 하는 점이다. 기성세대의 일본관은 반일에서 극일, 그리고 지일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을 적대하거나 악마화하는 관성이 힘을 발휘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엔은 2021년 한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분류했다. 우리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일본 문제만 나오면 감정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인식은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미국 학자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에서 강대국의 흥망을 ‘관용’으로 설명했다. 역사상 제국들은 타자를 포용할 때 번영했고 배타적으로 변할 때 쇠퇴했다. 로마는 다양한 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며 제국을 유지했고, 몽골제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미국 역시 이민자와 글로벌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반대로 로마와 몽골, 스페인과 대영제국은 배타적 정책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일본을 걷는 이유’ 책 표지.
‘일본을 걷는 이유’ 책 표지.

관용은 약자의 덕목이 아니라 자신감에서 나온다. 한국은 이미 그런 자신감을 가질 위치에 올라섰다.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개방은 상징적 사례다. 당시 반대 목소리가 높았으나 개방은 결국 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관용은 우리가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도덕적 자산이다.

흥미롭게 일본 역시 열린 태도를 통해 근대화를 이뤘다. 에도막부는 조총을 받아들였고, 메이지유신 시기에는 네덜란드 학문을 통해 서구 문명을 수용했다. 메이지유신의 두 축 사쓰마와 조슈는 경쟁적으로 영국에 유학생을 보냈고, 메이지 신정부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해 1년 2개월 동안 서구 12개국을 순방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러나 이후 일본은 배타적 군국주의로 치닫다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에 기반한 성숙한 시선이다. 일본의 과거사와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책임을 묻되, 과잉 민족주의나 감정적 대응에 머물 필요는 없다. 일본의 장점은 배우고 잘못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진국의 크기에 걸맞은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현장에서 만난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는 중요한 동반자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견제하고 역사 부정론에 맞서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일본을 하나의 얼굴로 단순화한다면 이들마저 반대편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친일파와 친일을 구분하는 관용, 그리고 대등한 시선을 유지할 때 비로소 곰팡이 핀 극우 정서를 넘어설 수 있다.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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