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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개혁 가로막는 개정상법 역설

이충희 마켓시그널부 차장

입력2026-03-20 17:41

지면 25면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열린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0.4배에 불과해 당장 청산해도 두 배 이익이 남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우리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국면을 깨뜨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금융위원회는 저PBR 기업 리스트 공표, 자율적 인수합병(M&A)을 통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도 내놓았다.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업을 적대적 M&A에 노출시켜서라도 개혁을 시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최근 한 전문가는 이러한 정책 기조에서 볼 때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우리 자본시장 정상화의 시험대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영풍은 2024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여 PBR 1.6배 가격에 공개매수를 단행하고 실제 고려아연 지분도 압도적으로 확보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으로 보이나 당시에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행위를 시장 원리에 따른 합리적 시도로 평가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다소 역설적이다. 오히려 이번 정부 들어 연달아 개정된 상법이 이렇게 지분을 확보한 최대주주의 손발을 묶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어서다. 이미 기존 고려아연의 경영진은 법의 허점을 파고든 상호주 형성,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활용해 영풍 측 의결권을 무력화하며 이사회를 수성해왔다. 또 이제부터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영풍 내부에서 이사회와 거버넌스 개혁의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배경이다.

상법 개정은 거버넌스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정부도 쪼개기 상장을 봉쇄하고 코스닥 2부 체제를 추진하는가 하면 적대적 M&A 길까지 터주는 모양새를 취하며 선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교한 법 기술이 개선안의 취지를 비틀고 규제의 틈새를 파고들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실제 고려아연 사례는 개정 상법이 소수주주가 된 기존 경영진의 의도적인 방어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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