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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교육이 IB에 주목하는 이유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IB, 설득·표현력 평가체제 잘 갖춰

교실서 ‘다름, 틀림 아니다’ 철학 구현

AI시대, 공교육 패러다임 전환 시급

입력2026-03-20 17:42

수정2026-03-20 23:53

지면 25면

우리 공교육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19년 대구·제주교육청의 IB본부(IBO)와 한국어화 협약 체결 이후 현재 12개 시도교육청까지 확산됐다. IBO조차 놀라는 속도다. 이 같은 빠른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공교육과 IB의 두 체계 간에 이미 철학적 친화성이 있기 때문이다.

접점의 핵심은 홍익인간 이념이다. IB는 1968년 스위스 비영리 조직이 국제기구 주재원 자녀들을 위해 개발한 국제 공인 대입 시험 및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한 창시자들은 “문화 간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더 나은,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를 교육의 미션으로 내세웠다. 이는 우리 교육기본법의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과 깊은 뜻에서 통한다.

IB가 함양하려는 ‘국제적 소양(international mindedness)’은 단순히 외국어 능력, 해외 진학, 국제기구 취업 역량이 전혀 아니다. 나와 다른 관점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태도, 근거에 기반해 대화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 공동체와 세계에 책임 있게 행동하는 마음을 뜻한다. ‘세계 시민 의식’ 혹은 ‘인류 공존 감수성’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아시시 트리베디 IBO 아시아태평양 본부장도 “홍익인간 이념은 IB 철학과 일맥상통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홍익인간의 귀결점은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이고, IB의 귀결점은 ‘더 나은, 더 평화로운 세상’이다. 자기중심성을 넘어 공동의 선을 지향한다는 본질이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 교육에서 홍익인간 이념은 선언에 그쳤는가. 문제는 평가 패러다임에 있다. 우리 교육도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다른 답은 틀린 답’으로 채점되는 시스템에서 12년을 보낸 학생은 다름을 편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IB는 “다름이 있는 사람도 옳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평생 학습자”를 미션에 명시하고, 이것을 시험 출제와 채점 기준까지 일관되게 반영한다. ‘다음 중 적절한 것은?’으로 변별하지 않는다. 누군가 정해 놓은 적절함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적절함을 꺼내게 하고,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고 완성도 있게 표현하는지를 평가한다. 논술·구술·프로젝트 등 정성적 역량을 정량화하는 엄정한 채점 시스템은 전 세계 명문대가 신뢰한다. 우리 공교육에서 IB 도입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새로운 교육 철학을 들여오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말해온 교육 철학을 교실에서 작동시키는 ‘운영체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가 간 전쟁, 국내 진영 간 극한 갈등, 학교 폭력은 규모만 다를 뿐 ‘다름은 틀리다’는 확증 신념에서 비롯된다. IB의 채점 기준은 다양한 반론과 다른 관점을 고려하면서 설득력과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에 구조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극단적 주장은 고득점을 받을 수 없다. 혼자보다 협업해야 고득점에 유리하다.

교육 개혁은 단순히 객관식을 주관식으로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답은 틀린 답’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게 하는 시험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목을 잡는다. 평가 인식론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홍익인간은 그 전환의 출발점이자 목적지로서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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