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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산업?…일상 모든 것이 제조업의 산물[북스&]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팀 민셜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팬데믹 이후 반복된 공급망 붕괴

과도한 효율성 추구가 부른 참사

선진국은 탈산업화로 경쟁력 상실

국가 생활수준 제조능력이 결정

한번 역량 잃으면 되찾기 어려워

미래세대에 중요성·매력 일깨워야

입력2026-03-20 17:55

수정2026-03-20 23:52

지면 20면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 사진 제공=알에이치코리아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 사진 제공=알에이치코리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극심한 생산 차질을 겪었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서다. 당시 팬데믹 여파로 이동 수요가 급감하자 완성차 업체들은 감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차량용 반도체 재고와 주문도 크게 줄었다. 이후 자동차 수요가 회복되자 업체들이 원자재 주문량을 늘렸지만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할 수 없었다. 반도체 업체들이 주문이 감소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줄이는 대신 마진이 높은 정보기술(IT) 기기용 칩 생산을 늘린 탓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이어지며 소비자들은 신차 주문 후 차를 받기까지 1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불과 5년 전 우리가 겪었던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은 분업화된 글로벌 제조 시스템의 취약성을 깨닫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제조 업체들은 소재·부품 내재화와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이자 공학부 제조업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신간 ‘우리의 삶은 제조된다’에서 제품 생산부터 배송·소비에 이르는 제조업의 여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제조업을 하수 처리 시스템에 비유한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하지만 일이 잘못되기 전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팬데믹 이후 반복된 공급망 붕괴는 제조 업체들이 과도한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제조 업체들은 재고와 공급 업체를 최대한 줄이면서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효율성만 앞세우다 보니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책은 과거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탈산업화의 부작용도 짚는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국에 있던 공장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후 서구 국가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금융·IT·경영 컨설팅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저자는 장하준 런던대 교수의 말을 빌려 제조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산품을 경쟁력 있게 생산하는 능력은 여전히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면서 기술력을 갖춘 제조 업체와 공급 업체가 가까이 있는 것이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개발한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실질적인 이점을 지닌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사람과 신제품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저자는 제조업의 미래에도 주목한다. 새로운 산업 혁명을 위해서는 인터넷과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가동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특히 수백 개의 기업이 엮여 있는 반도체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주 복잡한 반도체 생태계는 자동차부터 의료기기, 항공기, 농기계까지 너무나 많은 산업의 생명줄이 되었다. 만약 반도체 생태계가 흔들리면 전 세계 제조업에 미치는 여파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제조업에 대한 인식이 양극화돼 있다는 지적도 곱씹어볼 만하다. 한쪽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개인과 지역 사회 모두에게 근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제조업은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냄새 나고 위험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잊어버리는 게 최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저자의 결론은 “우리가 직면한 존재론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다음 세대에게 제조업의 중요성과 매력을 일깨우고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글로벌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 시장을 이끄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각종 규제에 막힌 기업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에 공장을 짓는 현실에서 “한 번 잃은 제조 역량을 되찾기는 매우 어렵다”는 저자의 경고가 무겁게 다가온다.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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