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향후 5년 인구구조 변화 분기점…교육∙노동 유연화 시급”
■이철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일자리∙주거 등 여건 변화 없이 출산율 반등 지속 어려워
사회서비스 수급 불균형∙인력 미스매칭 심화에 대비해야
AI발 청년일자리 ‘코호트 효과’∙숙련 사다리 단절도 우려
인구문제 풀 중장기 개혁 착수, 정권 초 올해가 골든타임
입력2026-03-23 17:45
수정2026-03-23 23:43
지면 33면
신경립
논설위원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4년 만에 0.8명대를 회복했다. ‘국가 소멸’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2023년의 충격적인 출산율 0.72명에서 2년 연속 반등한 수치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한 ‘0명대’라는 암울한 현실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대표 인구경제학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지금의 출산율 반등이 4~5년 뒤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라며 “출생아 수 감소를 위기의 원인이 아닌 ‘결과’로 보고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5년이 인구구조 변화가 본격화할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지적한 이 교수는 인공지능(AI) 보급과 맞물린 노동시장 미스매칭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구조 개혁과 연계한 인구정책에 올해부터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의 출산율 반등을 유의미한 추세 전환으로 볼 수 있나.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던 결혼이 2021년 이후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올랐다. 정부 정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반등세가 4~5년 뒤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과거에도 2000~2003년 ‘출산 절벽’에 따른 반작용으로 수년간 출산율이 반등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지금 출산율이 올랐다고 해도 아직 2021년(0.81) 수준도 회복하지 못했다. 결혼과 출산을 저해하는 노동시장∙교육∙주거 여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미미한 반등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는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추세 전환을 일으키려면 어떤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나.
△아이를 낳지 않다가 낳기로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출산 의사가 있고 여건도 받쳐주는, 이른바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정부 정책도 경계선에 있는 중상위층에 영향을 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경계선에서 멀어진 사람들의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 일자리가 안정되고 교육 부담이 줄고 주거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미래에는 바뀔 수 있다는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많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시도하는 것이 무주택 청년들에게 희망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본다. 교육·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꾸준히 노력한다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저출산 정책은 번번이 실패했다. 앞으로 인구정책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역대 정부는 출산율 감소를 인구 위기의 원인으로 보고 출생아 수를 늘리는 데 역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수치 목표를 정해 일희일비하느라 일관된 정책을 펴지 못했다. 이제 비전을 바꿔야 할 때다. 출생아 수 감소를 위기의 원인이 아닌 결과, 즉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출산을 가로막는 제약을 완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체계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다.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유지∙제고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사실 인구문제가 아직은 당면한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인구구조 변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는 향후 5년 정도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2015년 무렵부터 진행된 출생아 수 급감의 누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인구구조와 사회 시스템의 불균형이 증폭될 것이다. 우선 우려되는 것은 지역별 사회서비스 수급의 불균형이다. 지방에서 산부인과·보육시설 등의 인프라 붕괴로 출산을 더욱 기피하는 악순환이 진행될 수 있다. 둘째로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의 노동시장 진출 과정에서 기술∙산업의 급변과 맞물린 미스매칭이 향후 5년 내 매우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AI가 젊은 고숙련∙고학력∙고임금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일자리는 줄고 저임금 노동 인력 부족은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화에 따른 돌봄 인력난도 악화할 것으로 본다. 전반적인 인력 부족보다는 ‘불균형’이 향후 노동시장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
-AI 보급으로 노동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다.
△전문가들도 당황할 정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청년들이 겪게 될 ‘코호트 효과’다. 하필 AI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하는 특정 세대가 영구적인 미스매칭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의미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노동시장에 진출한 세대가 그 후로도 질 낮은 저임금 일자리에 갇힌 것처럼 말이다. 이들에게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보다 어린 세대를 대상으로는 새로운 교육의 판을 짜서 AI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AI로 인한 일자리 쇼크가 세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건가.
△그렇다. 역설적으로 50대 이상의 연령층은 대부분 AI 노출도가 낮은 분야에 종사하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본다. 비정규 임시직이 많은 고령자 일자리는 규제가 적고 인력 수요도 높아져서 오히려 고용 전망이 좋다. 문제는 청년 세대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신규 채용으로 인력을 키우지 않으면 언젠가 ‘숙련 사다리’가 끊길 수밖에 없지만 지금 인력을 새로 채용해 키우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실패를 막으려면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인력 양성과 재교육, 신규 채용 지원 등 고용 유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무엇인가.
△교육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수다. 노동시장 수급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직된 교육 시스템에 갇혀 있다가는 급변하는 인력 수요를 교육이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새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려면 교육 개혁 정도가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교육 공급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노동시장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대학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개방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노동시장도 일자리 이동이 자유롭고 재교육을 거쳐 새 분야로 인력이 유입될 수 있어야 더 많은 기회가 열린다. 지금은 일단 직장에서 나오면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고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의 이중구조도 점차 공고해지고 있다. 생산성과 기여도에 따라 취업 여부와 보수가 결정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60세 정년이 의무화된 2016년 사례를 봐도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 고령자가 청년 일자리를 직접 대체하지는 않지만 고령 근로자가 자신의 기여도보다 많이 받아가는 구조에서는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 때문에 채용을 덜 하거나 아웃소싱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정년 연장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능력이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할 수 있고 기여도에 따라 처우가 조정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수도권의 인구 과밀과 지방 소멸에 따른 불균형도 문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전망과 삶의 여건이 좋은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대도시를 선호하지 않거나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선택을 정책적 노력으로 바꿀 수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인데 비수도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미 인구가 빠져나간 곳까지 살리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지역을 활성화해 허브로 만들면 된다. 행정구역을 통합해 수도권 외에도 살 만한 지역 2~3곳을 만들면 거점도시와 배후지 간 분업과 공생이 가능해진다. 또한 주목할 점은 중장년층이 20여 년 전부터 대도시에서 지방 중소도시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 불균형을 완화하려면 지자체들이 청년 유치에만 매달리지 말고 중장년층에도 관심을 돌려 인프라 정비와 지원 프로그램 등 정밀하고 세분화한 정책을 펴야 한다.
-인구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관심도는 어떤가.
△아직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국내 정치의 격변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여기에 최근에는 이란 전쟁까지 터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구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을 흘려 보내면 5년 내에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인구 전략을 근본적으로 갈아엎고 다른 구조 개혁과 연계해 정책을 추진하려면 올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근 인구정책비서관도 임명됐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가 중요한 시기다.
-왜 올해가 중요한가.
△인구문제는 불균형 완화, 집값 안정, 교육 개혁, 노동시장 개혁까지 아울러 종합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될 중장기 개혁은 정권 초기에 시행해야 동력이 유지된다. 특히 교육 개혁 등을 정권 후반에 추진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올해를 놓치면 많이 늦어질 수 있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시카고대 인구경제학연구소 연구원, 뉴욕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199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 미국 UCLA 연구교수와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고령노동’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다시 쓰는 대한민국 인구와 노동의 미래’ ‘인구에서 인간으로: 인구위기 대한민국이 새롭게 나아갈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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