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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왜 다시 바둑교육인가

서순탁 경실련 공동대표(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입력2026-03-24 16:24

서순탁

서순탁

경실련 공동대표

AI 시대 바둑 교육의 중요성을 묘사한 AI 이미지.
AI 시대 바둑 교육의 중요성을 묘사한 AI 이미지.

인공지능(AI)의 비약적 진전은 우리에게 상상 이상의 효율과 편의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다. 기계가 계산하고, 기억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창의적 산출물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 교육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학교는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무엇만은 끝내 인간 안에 남겨두어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지식의 부족에서 오지 않는다.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기다릴 줄 아는 힘이 약해지며, 판단보다 반응이 앞서는 데서 비롯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초등 바둑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야 한다.

바둑은 흔히 전통적 두뇌 게임, 혹은 일부 아이들을 위한 특기교육 정도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것은 바둑의 표면만 본 평가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바둑은 단순한 승부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상황을 읽고, 보이지 않는 변화를 예감하며,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고, 한 번의 선택에 책임지는 사고의 훈련장이다. 한 수를 두는 과정에서 아이는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가늠한다. 눈앞의 이익과 장기적 손실을 저울질하고, 상대의 응수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다시 조정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것은 단순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사고의 질서와 판단의 품격이다.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량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하고 정답에 가까운 답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해석하며,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구성하는 힘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바둑은 이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가장 정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훈련시키는 교육적 매체다.

정답을 외우게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의 답에 안주하게 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결과만 보게 하지 않고, 그 결과에 이르는 사고의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AI와 경쟁하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다움을 기르는 훈련이다.

오늘날 초등교육 현장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아이들의 집중력과 자기조절력 회복이다. 디지털 환경은 아이들에게 유례없이 많은 정보와 자극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즉각적 보상에 익숙하게 만든다. 스마트폰과 영상, 게임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긴 호흡의 몰입보다 빠른 반응에 길들여지기 쉽다. 이때 바둑은 매우 상징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바둑은 속도보다 숙고를, 자극보다 정적을, 즉각적 쾌감보다 지연된 성취를 요구한다. 아이는 한 수를 두기 전 멈추어 생각해야 하고, 눈앞의 유혹을 누른 채 판 전체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이 훈련은 단지 게임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삶 전체에 필요한 사고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바둑교육의 깊이는 인지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정서와 인격의 교육이기도 하다. 바둑판 위에서 아이는 승리의 기쁨뿐 아니라 패배의 의미도 배운다. 중요한 것은 이겼느냐 졌느냐가 아니다. 왜 그 수를 두었는지, 어디에서 판단이 흔들렸는지, 다른 선택은 가능하지 않았는지를 되짚어보는 복기의 과정이 더 본질적이다.

이 성찰의 경험은 실패를 수치가 아니라 배움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힘을 길러준다. AI 시대일수록 더욱 요구되는 것은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수정 가능성에 열려 있는 태도다. 한 번의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고쳐 다시 도전하는 힘, 곧 회복탄력성과 자기 성찰의 능력이야말로 미래 교육의 핵심 자산이다.

바둑은 또한 관계의 윤리를 가르친다. 우리는 디지털 문명이 연결을 확장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관계의 예법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바둑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결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은 소통을 품고 있다. 상대의 수를 함부로 조롱하지 않고, 자신의 차례를 신중히 기다리며, 승패와 관계없이 예를 다하는 태도는 공동체적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초다. 수담(手談)이라는 오래된 표현은 우연히 생긴 말이 아니다. 말이 아니라 행위로, 소음이 아니라 절제로, 경쟁이 아니라 존중으로 관계를 배우는 것, 이것이 바둑이 지닌 교육적 품격이다.

이 점에서 초등 바둑교육은 오늘의 학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창의성, 자기주도성, 공동체성, 비판적 사고, 정서적 안정과 같은 전인적 역량이 한층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바둑은 이러한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길러주는 보기 드문 교육 활동이다. 창의적 체험활동, 돌봄과 방과후 프로그램, 인성교육과도 유연하게 접목될 수 있다. 더구나 시작 단계에서는 9줄, 13줄 바둑판을 활용한 놀이 중심 접근을 통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다. 처음부터 복잡한 규칙을 익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는 즐거움, 기다리는 기쁨, 스스로 판단하는 경험을 먼저 만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제 바둑을 전통문화 보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물론 바둑은 오랜 역사와 정신을 품은 귀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둑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 역량을 길러주는 매우 현대적인 교육 도구라는 점이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은 숙고한다. AI는 추천할 수 있지만 인간은 결정하고 책임진다. AI는 답을 낼 수 있지만 인간은 의미를 묻는다. 바둑은 바로 이 차이를 아이들이 몸으로 체득하게 해준다.

학부모들이 바둑교육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둑은 일부 영재를 위한 특별한 조기교육이 아니다. 생각하는 힘, 참을 줄 아는 힘, 패배를 견디는 힘, 다시 시작하는 힘을 기르는 기본교육이다. 교사들에게도 바둑은 소수 학생의 취미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실 안 모든 아이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전인교육의 유력한 도구로 읽혀야 한다.

기계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 교육은 더 깊어져야 한다.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아이보다 더 잘 판단하는 아이가 중요하다. 더 빠르게 반응하는 아이보다 더 오래 숙고하는 아이가 필요하다. 더 화려한 기술을 다루는 아이보다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가 미래를 이끌 것이다.

바둑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먼저 온 미래다. 그 안에서 길러지는 힘은 놀랍도록 미래지향적이다. 더 빠른 자극이 아니라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한 지금, 우리가 다시 초등 바둑교육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순탁의 파이데이아
서순탁의 파이데이아

*He is…

올 초 경실련 공동대표로 선임된 그는 도시계획 및 행정 전문가로서 서울시립대 총장 시절부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와 지역 소멸 문제를 고민해왔다. 경실련 공동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혁신에 나서는 한편 AI 시대에 부합하는 ‘일과 학습의 병행’ 모델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인 인재들이 한국 사회에서 실전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한국형 패스웨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고 있다.

*파이데이아…

파이데이아 (Paideia)는 ‘이상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도시(폴리스)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과 인격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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