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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며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입력2026-03-25 18:07

지면 34면
홍종우
홍종우

1893년 파리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 속에 한국의 전통 의상을 착용한 남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전통 모자인 정자관을 쓰고 손에는 흰 장갑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한 이 기이한 인물의 이름은 홍종우이다. 사진이 촬영되던 시점 그는 프랑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근무했다. 이 박물관은 설립자 에밀 기메의 이름을 본떠 기메박물관이라고도 불리며 지금도 유럽 최고의 아시아 전문 박물관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에서 홍종우는 1892년부터 ‘외국인 조력자’라는 신분으로 채용돼 1893년 개설된 한국실의 개관 준비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임무는 한국 관련 전시 유물들의 목록과 설명서를 작성하고 이 유물들을 전시 공간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는 한국인 최초의 박물관 전문 인력이자 큐레이터였던 것이다.

1893년 기메박물관 한국실의 개관은 한국과 프랑스 간 문화 교류의 시작을 의미함과 동시에 해외 박물관에서의 첫 번째 한국 문화 전시 공간의 개설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국내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해외에서 먼저 한국의 전통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공간이 설립됐다는 점에서 박물관학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890년 12월 프랑스에 도착해 약 2년 7개월간 파리에 체류했던 홍종우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고종과 대원군의 초상을 지니고 다니면서 당대 프랑스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알리려 노력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가 주최한 만찬에서는 조선이라는 국호의 기원과 한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연설을 수행했고 앙리 로스니와 함께 춘향전과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홍종우의 유일한 친구였던 화가 펠릭스 레가메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맹수에게서 풍겨오는 경이감과 공포를 느꼈다고 기록했다. 예술가의 직감이 적중한 것인지 레가메는 홍종우가 파리를 떠난 후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을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된다. 1894년 런던에서 발행된 차이나 텔레그래피 5월 21일 자 기사. ‘살해범 홍종우, 김옥균의 유해와 함께 조선으로 이송되다.’ 비상한 시국에 참으로 비상한 인물들의 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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