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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치료’, 이제 여성 건강을 돌아볼 때

■박현영 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교수·전 국립보건연구원장

시술 과정중 우울·임신성 당뇨 등에 노출

표준진료에 심리평가 포함·안전지침 마련

‘여성건강 우선’ 출산지원 정책 만들어야

입력2026-03-31 05:00

수정2026-03-31 05:00

지면 30면
박현영 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교수·전 보건연구원장
박현영 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교수·전 보건연구원장

한국 사회는 지금 전례 없는 인구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로 2023년의 0.72보다 다소 상승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며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난임 치료 지원을 확대해 왔고 실제로 치료를 받는 인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한 해에만 7만 8000건 이상의 난임 치료가 이뤄졌고, 시술 건수는 20만 건을 넘어섰다. 특히 서울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날 정도로 그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제 난임 치료는 선택적 의료가 아니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경로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은 충분히 보호되고 있는가.’ 난임 치료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과배란 유도, 난자 채취, 반복되는 시술 과정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누적된 부담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약 3분의 1의 여성이 치료 과정에서 우울이나 불안을 경험하며 일부는 치료 이후에도 장기간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 특히 만성적인 불안이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신체적 위험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체외수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태임신은 임신성 당뇨병, 자간전증, 조산의 위험을 높인다. 신생아 역시 저체중 출생이나 낮은 ‘아프가 점수(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점수)’와 같은 불리한 건강 지표를 보일 가능성이 증가한다. 즉, 난임 치료는 단순히 임신 성공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산모와 신생아의 전반적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의료행위이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과 윤리 문제가 드러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다. 황우석 사건은 난자 채취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와 건강 위험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킨 대표적 사례였다. 이 사건은 생명윤리 제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지만 오늘날 난임 치료가 확대되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같은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정책 목표가 개인의 건강보다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중앙 난임·우울증 상담센터를 통해 무료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립보건연구원이 난임 치료 여성의 장기 건강 영향을 추적하는 코호트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근거 기반 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원은 여전히 ‘시술 중심’에 머물러 있다. 상담 서비스는 자발적 이용에 의존하고 있으며 치료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체계는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다. 그 결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많은 여성이 제도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적절한 시기에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체외수정에 성공한 영국은 난임 치료 지원뿐 아니라 정신건강 지원까지 제도화한 대표적인 국가다. 영국은 난임을 단순한 임신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건강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공공정책에 반영해 왔다. 이제 우리 정책도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첫째, 난임 치료 여성에 대한 정신건강 평가는 선택이 아닌 표준 진료 과정으로 포함돼야 한다. 둘째, 시술 전·중·후를 포괄하는 통합 건강관리 지침을 마련해 난임 치료 여성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국립보건연구원 코호트를 기반으로 반복 시술이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이 희생된다면, 그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될 수 없다. 난임 치료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며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영역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이 낳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낳고 건강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난임 치료 확대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이후의 삶까지 책임질 때, 비로소 국가의 정책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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