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듣기

  • 글자 크기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기사 공유

  • 북마크

  • 다크모드

  • 프린트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유가 폭등기 위기 관리법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입력2026-03-30 19:10

김찬석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호르무즈 해협을 배경으로 육해공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호르무즈 해협을 배경으로 육해공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AI 이미지.

불타는 중동의 하늘이 길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사이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르고,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에 적신호가 켜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해협의 봉쇄와 불안정은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산업 전반과 서민 생계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위기다. 유가가 배럴당 120, 130달러를 향해 치닫는 시나리오는 이제 가상이 아니라 현실의 문턱에 와 있다.

이 위기가 까다로운 이유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 공급망 위기, 물가 위기, 산업 위기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는 복합위기는 위기관리의 영역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사례로 꼽힌다. 단일 원인에 단일 처방을 내리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터지고, 한 계층을 보호하면 다른 계층의 부담이 커진다. 더구나 전쟁이라는 외부 변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대응뿐이다. 그 대응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이 위기의 깊이와 길이를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다. 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다. 지혜롭게 함께 버티는 것. 이 위기는 정부만의 문제도,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공동체의 위기다.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는 공동체의 지혜로만 넘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외교적 지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는 원유는 어떤 수단으로도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가 아랍에미레이트 등에서 원유 우선 제공 약속을 받은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란과 직접적인 군사적 대립 관계에 있지 않은 한국은 이 지점에서 독자적인 외교 공간을 가져야 하는데, 한미 동맹 등의 현실은 우리 운신의 폭을 제대로 갖게 해주고 있지 못하다. 한미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란을 포함한 중동 원유 수출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균형 외교가 절실하다. 원유 수송의 안전을 확보하는 실용적 외교, 그것이 지금 한국 외교가 발휘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지혜다.

국내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하다. 이번 위기에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몇 가지 대응은 긍정적이다. 유가 최고 가격제 시행은 시장의 폭주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유가가 배럴당 120에서 130달러에 이를 경우 민간 차량 5부제 시행을 검토하는 것은 수요 측면에서 실효성 있는 예비 대응 수단이다. 이란 전쟁 추경의 신속한 편성은 위기 대응 재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한다는 점에서 평시의 관성을 깨는 결단이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속도와 결단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신뢰의 신호가 된다.

여기에 더해 에너지 수급 상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급망 차질 시 영향을 받는 산업의 순서, 단계별 대응 계획을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어려움이 있는데, 괜찮다고만 말해서는 안된다. 불확실성이 공포를 만들고, 공포가 사재기와 패닉을 만들 수 있다. 국민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정부를 숨기는 정부보다 더 신뢰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는 공포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아울러 에너지 위기의 고통은 모두에게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 농어촌 주민, 난방비 부담이 생존과 직결되는 가구, 원료비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에게 충격은 훨씬 크다. 추경 재원을 가장 아픈 곳에 집중하는 핀셋 지원이 보편적 보조금보다 효과적이다.

기업의 역할도 크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산업을 중심으로 자발적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정부와 공급망 정보를 공유하며 원료 수급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위기 앞에서 경쟁보다 협력이 더 합리적인 전략이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김찬석 교수의 ‘AI 시대의 위기 관리’ 책 표지 디자인.
김찬석 교수의 ‘AI 시대의 위기 관리’ 책 표지 디자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어쩌면 위기 극복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불필요한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가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의식적으로 낮추는 것. 수천만 명이 동시에 실천하면 그 총합은 어떤 정책보다 강력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만들어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은 금의 양 때문만이 아니었다. 위기 앞에서 국민이 하나로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켰다. 공동체의 힘은 숫자가 아니라 방향의 일치에서 나온다.

에너지 복합위기는 그 어떤 위기보다 국민통합적 지혜를 요구한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이 위기는 장기전이다. 장기전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정부는 외교적 지혜로 공급로를 지키고 선제적 대응으로 신뢰를 쌓으며, 기업은 협력하고, 국민은 절약으로 응답하는 것.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유가 급등 위기는 재난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유가 급등 앞에서 우리가 진짜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 공동체의 위기 대응 체력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위기관리자다.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찬석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He is...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정치학 석사-언론학 박사

-현 청주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방문교수

-전 한국과학재단 행정원, 인천국제공항 전문계약직, 제일기획 차장, 씨티은행 홍보이사

-전 한국PR학회장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음
이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