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살아보니… 남을 위해 한일은 후회 없더라”
■ 2026 서울경제 라운드 테이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첫 강연
“이기집단 많아지면 사회 병들어
부하만 있는 리더는 독재 전락
선의의 경쟁 통해 가치 찾아야
도움주고 “고맙다” 인사받는 삶
거창한 성취없어도 할수있는 일”
입력2026-03-31 18:42
수정2026-03-31 23:49
지면 29면
“이기주의자는 가정도 직장도 끝내 지탱하지 못합니다.”
누군들 못 할까 싶은 말 같지만, 106년의 세월과 경험이 그 뒤에 버티고 서면 말의 무게는 전혀 달라진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31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에서 열린 ‘2026 서울경제 라운드테이블’ 강연자로 나서 한국 사회가 이기주의와 이기 집단의 팽창을 극복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만 얻으려는 삶이 아닌 남을 위해 사는 삶이 결국 후회 없는 인생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도 전했다. 1920년생, 올해로 106세인 김 교수는 도산 안창호의 강의를 듣고 윤동주 시인·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공부한 살아있는 근현대사의 상징이다. 그는 ‘백 년을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전환의 시대,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주제로 단상에 오른 뒤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도 1시간 가까이 차분히 강연을 이어갔다. 테이블 위 손목시계를 이따금 내려다보며 시간을 조절하는 여유를 보였고, 간간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삶의 지혜를 풀어냈다.
김 교수가 긴 세월을 탐구하며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개개인의 인격이 곧 지도자로서의 자격으로 이어지며, 그 인격의 핵심은 이기주의의 탈피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기주의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 이기 집단이 탄생하고, 이런 집단이 많아지면 사회는 병든다”며 지금의 정치권과 노동조합이 권력과 이익에 함몰된 이기 집단이 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더십에 대해서도 죽비 같은 일침을 가했다. 스승인 인촌 김성수 선생을 모셨던 시절을 회고하며 김 교수는 “지도자가 존경하는 친구와 더불어 일하면 민주주의가 되지만, 부하만 있고 친구가 없는 사람은 어디서나 독재가 된다”고 강조했다. 협력하는 동료가 있을 때 건강한 리더십이 발휘되는 반면, 심부름하는 부하만 곁에 두는 권력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경고다. 회사든 국가든 모든 조직에 통용되는 진리라고 그는 덧붙였다.
갈등과 경쟁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에는 엄한 꾸짖음도 잊지 않았다. “아무런 경쟁이 없는 사회에서는 개인도 국가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풍족한 환경에서 경쟁 없이 살다 소멸해간 어느 원주민 공동체의 역사를 예로 들며 경쟁 자체를 없애는 것이 답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다만 그 경쟁은 이기주의에 기반해 서로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림픽 선수들이 상대와 겨루면서도 서로의 기록 경신을 격려하듯, 더 높은 가치를 향해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개인과 나라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인생에서 60세부터 80세까지를 황금기로 꼽았다. 정년퇴직 후 ‘나를 위한 일’이 아닌 ‘남겨진 사명’을 위해 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인생이 시작됐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는 소회다. 그는 “수입이나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단계를 넘어, 일 자체의 가치와 타인의 행복을 목표로 삼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나이를 잊고 사명을 좇은 삶은 기록으로도 남았다. 김 교수는 2024년 9월 출간한 ‘김형석, 백년의 지혜’로 세계 최고령 저자(당시 104세)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김형석, 백년의 유산’으로 자신의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강연 끝자락에서 그는 90대에 한 대학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그는 “나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가 많은데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자문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오래 사는 동안 남을 위해 고생 많이 했다는 격려의 의미라는 것이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남는 것이 없었겠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받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 노력이 쌓여 상으로 돌아왔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남을 위해 덕을 쌓으며 살 때 직장도 행복한 곳이 되고, 나이 들어 진심 어린 감사를 받는 인생이 된다”며 이는 거창한 성취가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독려했다.
“106년을 살면서 후회스러운 일은 대개 나를 위해서 했던 일들뿐”이라는 노(老) 교수는 “남을 위해 하는 일은 후회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인생을 정리해 볼 때다. 부디 ‘좋은 출발’을 해달라”며 청중들에게 묵직한 당부이자 큰 과제를 건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서울경제 라운드테이블은 80여 명의 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강연은 경영진에게 시대적 통찰을 제공하고자 마련했으며 올해는 역사·과학·경제·문화·건강 등 각 분야 전문가의 강연이 10회에 걸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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