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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석유·가스 20%가 증발했다... 전쟁이 보여준 탈탄소 ‘경착륙’ 시나리오[페트로-일렉트로]

[전환기 맞은 탈탄소]

<1> 화석연료와 ‘질서 있는 퇴장’

입력2026-04-01 06:30

수정2026-04-01 11:57

탈탄소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의 속도로 진행돼야 하는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에너지 수급과 안보뿐 아니라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번 사태가 던진 질문을 포함해 글로벌 탈탄소가 맞닥뜨린 현실과 그에 대한 고민을 연속해서 짚어보겠습니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1970년대 1·2차 오일 쇼크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를 합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미·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발생한 에너지 위기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는 중동산 석유와 LNG는 각각 전체 공급량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IEA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감소한 세계 석유 공급량은 하루 1100만 배럴로 1·2차 오일 쇼크 당시 차질을 빚었던 석유 공급 규모의 2배 이상입니다. 줄어든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 약 1400억㎥는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발생한 750억㎥의 2배에 가깝고요. 비롤 사무총장은 “세계 경제가 중대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미래’

한마디로 20%에 해당하는 석유와 가스가 시장에서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현재 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 비중을 축소하는 탈탄소가 진행되고 있죠. 에너지 전환이 계속된다면, 석유·가스 20%가 사라진 현재 상황은 언젠가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의 한 지점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계기로 먼저 살펴본 미래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반갑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는 전쟁 전보다 약 5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전쟁 전까지 원유 시장에 잇따랐던 공급 과잉 우려는 이제 ‘수급 불안’ 경고로 뒤바뀌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우리나라만 봐도 에너지 위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에너지 수급 위기가 긴급할 경우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대통령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중동 지역으로부터 에너지 수급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더욱 철저한 점검과 치밀한 비상 대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연재 기사: 호르무즈發 에너지 충격, 왜 한국을 유독 세게 때렸나>, <커지는 ‘4월 에너지 위기설’... 진짜 위기는 그 다음에 온다>

26일(현지 시간) 인도 뭄바이의 한 가스 공급소 인근에서 액화석유가스(LPG)를 받기 위한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EPA연합뉴스
26일(현지 시간) 인도 뭄바이의 한 가스 공급소 인근에서 액화석유가스(LPG)를 받기 위한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EPA연합뉴스

‘좌초자산’ 석탄의 역습

하지만 급격한 에너지 공급 축소는 탄소 감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이 석탄 발전과 생산량을 더 늘려 ‘에너지 공백’ 대응에 나섰기 때문인데요. 인도를 포함해 태국과 방글라데시는 석탄 발전소 가동률을 최고로 높였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 인도네시아는 탄광 업체들이 석탄 생산량을 늘리도록 허용하기로 했고요. 일본은 4월부터 1년 간 석탄 화력 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는 긴급 조치에 들어갑니다. 석탄 발전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으로 활용도가 다시 높아지는 ‘유턴’을 겪고 있는데, 중동발(發) 에너지 위기는 이 추세를 강화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탈탄소, 세밀한 설계도를 그려야

즉 이번 전쟁으로 인한 각종 충격파는 에너지 전환이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을 했을 때 벌어질 사태의 예고편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해 노트르담대 키오스쿨의 에밀리 그루버트 지속가능 에너지 정책 부교수는 “탄소 ‘제로’로 점진적 전환뿐 아니라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포함하는 명확하고, 잘 조율된 계획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질서 있는’ 화석연료 퇴장이 이행돼야 탈탄소가 잘 이행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출처: Designing the mid-transition: A review of medium-term challenges for coordinated decarbonization in the United States, 2022) 그루버트는 이를 위해 ‘중간 전환(mid-transition)’을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투자은행(IB) 바클레이즈도 현재 “전력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에너지 공급과 산업 생산, 전력 시스템을 동시에 재구성하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화석연료 설비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화석연료 설비에 중첩되어 추가되고 있는 식이라는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은 재생에너지는 ‘좌초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에너지 전환으로 화석연료가 좌초 자산화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재생에너지 가치가 떨어지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이번 전쟁이 보여준 ‘경착륙’ 시나리오는 정교한 설계 없는 탈탄소 위험성을 시사하는 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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