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최빈국의 ‘불편한 습관’
중동전쟁 끝나도 고유가 ‘뉴 노멀’ 될듯
나프타 부족 사태에 때아닌 ‘쓰봉’ 대란
韓, 플라스틱·비닐봉투 사용 세계 1위
에너지·1회용품 등 ‘덜 쓰는’ 습관부터
입력2026-04-02 06:01
수정2026-04-02 06:01
지면 30면
한영일
논설위원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촉발된 고유가 충격이 한 달 넘게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국제유가의 급등은 단순히 주유소 가격표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며 공장들이 멈춰 섰고 그 여파는 비닐과 플라스틱 같은 일상 소비재로까지 번지고 있다. 금융과 산업 등 거시경제 충격파는 물론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들던 포장재, 배달 음식의 용기 하나가 사실은 국제 정세와 에너지 시장에 깊이 연결돼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현대 문명은 사실상 ‘석유 문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손에 쥐는 칫솔부터 밤에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플라스틱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값싼 원유’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고유가가 이 전제를 흔들자 우리는 비로소 플라스틱이 유한한 자원이며 국제 정치의 볼모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쓰레기 자체를 줄이려는 고민보다 쓰레기봉투를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이 먼저 나타났다. 재활용에 앞장서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절약보다 소비 유지가 먼저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회용품과 관련해 우리는 이미 부끄러운 기록들을 안고 있다.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연간 200㎏으로 세계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 수준이다. 1인당 비닐봉투 사용량 역시 연간 533개(2020년 기준)로 유럽연합(EU) 국가 평균(200여 개)과 독일(100여 개) 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도덕성을 넘어 사회구조적 요인도 크다. 1인 가구의 확산은 포장 단위를 쪼개게 만들었고 이는 곧 포장재 사용량의 폭증으로 이어졌다. 택배와 새벽 배송, 즉석조리 식품의 일상화는 편리함을 극대화하면서 ‘플라스틱 대국’이라는 오명도 가져왔다. 특히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분리배출도 생활화됐지만 현실은 다르다. 행동의 방향이 ‘사용 이후’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실제 분리배출된 폐기물 가운데 재활용되는 비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결국 ‘덜 쓰는 것’이 아닌 ‘잘 버리면 된다’는 믿음이 일종의 면죄부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소비자는 점점 더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기업은 그 요구를 충족한다는 명목으로 더 많은 포장재를 사용한다. 이 악순환 속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은 줄어들 틈이 없다. 여기에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훼손했다. 일회용 빨대와 컵 사용 제한 등 야심 차게 내놓았던 규제들이 현장의 반발과 정무적 판단에 밀려 유예되거나 철회되기를 반복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쓰레기봉투 대란을 놓고 정작 일회용품 절제는 빼놓은 채 “종량제봉투는 충분하다”며 공급 안정만 강조한 것 역시 아쉽다. 정부조차 얼마나 줄일 것이냐보다 어떻게 버릴 것이냐에만 신경 쓰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세계 8위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1인당 소비량은 OECD 평균 1.7배에 달한다. 하지만 자원이 없는 탓에 석유나 가스 등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어 에너지 자급률은 16%에 불과하다. 그 어느 나라보다 고유가에 취약한 구조다. 진짜 문제는 이번 전쟁 전에 배럴당 70달러 선에 그쳤던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쟁이 끝나도 수십억 원대의 통행세까지 거론하는 호르무즈해협의 불안정성과 중동의 파괴된 정유 인프라는 에너지 가격의 ‘뉴노멀’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정책을 재설계하고 기업은 생산 구조를 효율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도 불필요한 포장을 거부하고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는 등 ‘불편한 습관’을 고민해봐야 한다. 전기 절약과 대중교통 이용 확대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공공에만 적용하는 차량 5부제 등을 민간까지 확대하는 등 강력한 수요 관리 카드를 꺼낼 필요도 있다. 우리는 이제 당연하게 누려온 편리함이 과연 어디에서 왔고 지속 가능한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때다. 에너지를 덜 쓰는 작은 실천이 사회 전체의 ‘거대한 전환’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고유가 시대에 국민들의 작지만 위대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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