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도 신던 ‘세계 최고 신발’ 올버즈, 왜 590억 헐값 신세가 됐나
◆ 박시진의 글로벌 픽 <9>
‘실리콘밸리 유니폼’ 운동화, 年 100만 켤레 판매
울·유칼립투스 잎·사탕수수 등 친환경 재료로 생산
디카프리오도 반해 투자 진행…기업가치 6조원 평가
무리한 사세 확장에 높은 광고료…불명확한 타깃층
레깅스·골프화 등 연이은 실패…결국 AEG에게 매각
입력2026-04-02 06:00
수정2026-04-02 06:00
오바마 미 전 대통령,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 창업자,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할리우드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실리콘밸리 유니폼’이자 ‘할리우드 스타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올버즈 스니커즈를 즐겨 신었던 사람들입니다. 2016년 3월 뉴질랜드산 초극세 메리노 울로 만든 ‘울 러너’라는 신발 단 한 종류로 시장을 뒤흔든 친환경 신발 기업 올버즈는 출시와 동시에 타임지가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연간 판매량만 해도 100만 켤레가 넘었습니다.
그랬던 올버즈가 불과 5년 만에 기업 가치가 8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채 3900만 달러(약 590억 원)에 아메리칸 익스체인지 그룹(AEG)으로 매각됐습니다. 지적 재산권과 기타 자산은 물론 부채까지 모두 넘기는 조건입니다. 올버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올버즈의 출발점은 친환경이었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팀 브라운은 뉴질랜드 축구 국가대표 출신이고, 다른 공동 창업자인 조이 즈윌링거는 샌프란시스코 출신 생명공학 전문가였습니다. 친환경적 디자인과 착용감에 중점을 뒀고, 울에 이어 여름용 신발 소재인 유칼투스 잎, 사탕수수 등 천연 소재로 만든 여름용 신발을 잇달아 내놓으며 1억 달러(약 1500억 원)가 넘는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친환경 운동가’ 디카프리오도 투자를 진행했는데, 2021년에는 기업공개(IPO)에도 성공해 3억 달러(약 4500억 원)를 조달했습니다. 한때 시장에서는 올버즈의 기업 가치를 40억 달러(약 6조 원)까지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반의 성공에 기대어 무리하게 사세를 확장한 탓에 회사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영진은 성장 잠재력을 앞세워 국내외로 사업을 확장했고, 2019년 말까지 미국에 오픈한 매장은 15개에 달합니다. 이후 중국, 영국, 뉴질랜드 등에 연이어 매장을 선보였고, 2020년에는 한국에도 론칭해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 롯데백화점 잠실점, 부산 아난티 코브점, 제주 스토어 등 서울과 지역 상권에 무려 20개가 넘는 매장을 열었습니다. 올버즈 제품의 상당수가 부산의 신발 공장에서 생산되는 터라 한국 지역에는 더욱 공격적으로 매장을 오픈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영진은 대대적인 TV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버전의 양모 신발을 홍보하고 유칼립투스 나무 섬유 펄프와 같은 신소재로 만든 운동화를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핵심 오판은 소비자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에 프리미엄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는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의 매니징 디렉터인 닐 손더스는 “지속 가능성은 스타일, 가격, 편안함과 같은 요소에 비해 중요도가 훨씬 낮다”며 “올버즈는 친환경적인 이미지에 더해 이러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끝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품의 품질 문제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올버즈는 라인업 확대를 위해 울 소재 운동복을 출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울 레깅스는 비침이 심해 소비자들의 환불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수만 벌의 레깅스를 생산한 뒤였지만 판매가 불가능했습니다. 해당 레깅스는 1년 후 생산이 중단됐고, 재고는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습니다. 이 속옷, 패딩 재킷, 골프화 등 새로운 제품군에도 진출했지만, 줄줄이 실패했습니다.
타깃 고객층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점도 치명적이었습니다. 올버즈는 주요 고객군을 스니커즈 매니아로 잡을지, 아니면 일반 여성 소비자로 잡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실리콘밸리의 핵심 고객층을 비롯한 충성 고객들마저 이탈했습니다. 게다가 ‘온(On)’이나 ‘호카’, ‘커먼프로젝트’처럼 편안함과 디자인을 앞세운 경쟁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하며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미국 내 올버즈 매장은 아울렛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한때 브랜드의 상징이었던 정가 매장이 전부 사라진 것입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고, 연간 순손실은 7700만 달러(약 1160억 원)에 달했습니다. 상장 이후 올버즈는 단 한 분기도 흑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매각이 발표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주가는 16% 급락했고, 전날 종가 기준으로 상장 이후 누적 하락률은 99%를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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