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걸친 제국 DNA…푸틴 팽창주의 불렀다[북스&]
■러시아 제국 연구(로널드 수니·발레리 키벨슨 지음, 너머북스 펴냄)
키예프 루스·소련서 현정권까지
10세기 이르는 러시아 통치 조명
민족 아닌 제국의 렌즈 통해 분석
우크라 침공 등 인접국에 영향력
최근 美·이란 전쟁까지 개입 나서
세력 확장에 되레 고립 아이러니
입력2026-04-03 17:44
수정2026-04-03 23:35
지면 17면
지난달 27일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 공군 기지에 있던 E-3 센트리 공중 조기경보통제기(AWACS) 한 대가 파괴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격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미군 기지를 위성으로 촬영한 정보를 이란에 넘겨줬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란에 드론과 운용 기술도 제공하는 등 군사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4년째 전쟁을 이어가는 데 이어 이란 전쟁까지 개입하면서 전 세계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는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러시아는 역사적 영토를 해방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신간 ‘러시아 제국 연구’는 키예프 루스에서 시작해 모스크바국, 제정 러시아, 소련, 그리고 현재의 푸틴 정권에 이르기까지 1000년에 걸친 러시아의 역사를 조망한다. 미국 내 러시아사 연구를 대표하는 로널드 수니 미국 미시간대·시카고대 명예교수와 발레리 키벨슨 미시간대 석좌교수가 함께 썼다.
방대한 러시아 역사를 ‘민족’의 관점이 아닌 ‘제국’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기존 책과 차별화된다. 저자에 따르면 제국은 절대 주권을 주장하는 통치자가 이질적 지역·민족으로 구성된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는 정치 체제다. 또 제국은 본국과 주변국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관점을 설정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제국 통치 방식의 핵심은 ‘차등화’와 ‘상호성’이다. 차등화는 권력 관계가 민족이나 언어, 종교와 지역, 신분, 계급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구축되는 것이다. 상호성은 통치자가 강압이 아닌 양보를 통해 피지배자들에게 억압적인 질서가 정당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쌍방향적인 관계다. 이 개념을 바탕으로 저자는 러시아 제국의 통치 역사는 대부분 “피지배자가 동의하는 권위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럽의 중동부, 우크라이나, 캅카스, 중앙아시아 등 러시아 변방 소수 민족의 역사도 다룬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블라디미르 레닌은 비러시아 소수 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레닌에 이어 권력을 잡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러시아인 중심의 중앙집권적 민족 정책을 추구했다. 스탈린은 1938년 10월혁명 기념일에 “소련에서는 모든 민족이 동등하지만 가장 소비에트적이며 혁명적인 민족은 러시아 민족”이라고 말했다. 고려인 사례도 언급된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피해 소련의 극동으로 이주한 17만 명 이상의 고려인이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됐다.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통치기에 소련의 권위가 약화되자 민족 문제는 소련 해체의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의 말미에는 러시아가 1990년대 이후 체첸과 조지아를 침공하고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병합한 역사를 짚는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에 안보 딜레마를 야기했다고 분석한다. 역내 안보를 강화하려는 유럽의 조치가 러시아에는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후 푸틴은 미국 일극 체제에 반대하며 인접 국가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역 패권국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게 된다.
책은 2016년에 출간됐지만 ‘한국어판 보론’을 통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추가로 설명한다. 주변 경쟁국들의 위협에 노출된 취약한 국가라는 러시아의 불안감이 열강이 되려는 야망과 결합해 자체 역량을 넘어서는 과도한 세력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한다. 또 이런 야망과 과도한 팽창이 오히려 러시아의 불안정성과 고립을 확대하고 취약성을 심화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제국적 관행이 러시아 통치의 핵심적인 방식이었고 러시아의 패권 추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제정과 제국의 이미지 및 관행은 러시아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선택 가능한 다른 대안들을 계속해서 압도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고 북중러 밀착이 심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보는 우리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888쪽, 5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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