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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재난 AI’ 데이터 플랫폼

오정훈 펜타게이트 대표

기후위기에도 홍수·산사태·산불 통계 부족

폐쇄망 재난재해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글로벌 플랫폼 만들되 각국이 판단·책임”

입력2026-04-06 13:48

수정2026-04-06 13:58

오정훈

오정훈

펜타게이트 대표이사

기후변화 시대 각종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재난 AI’의 필요성을 묘사한 AI 이미지.
기후변화 시대 각종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재난 AI’의 필요성을 묘사한 AI 이미지.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기후위기·기후변화 시대에 재난은 늘 연결이 약한 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산불은 산악지대의 바람길에서 번지고, 홍수는 하천과 지하공간을 순식간에 덮치며, 산사태는 눈에 띄지 않던 사면의 작은 이상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 인터넷과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가장 취약해질 수 있다. 통신이 끊기거나 외부 접속이 제한되면 판단도, 경보도 늦어진다. 그래서 앞으로의 재난 대응 기술은 “얼마나 정교한가”보다 “연결이 끊겨도 현장에서 즉시 작동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폐쇄망에서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재난재해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이 모델은 단순히 불꽃이나 물웅덩이를 인식하는 영상 분석기를 뜻하지 않는다. 드론, CCTV, 열화상, 수위계, 강우계, 풍속계, 지형·지질 정보, 과거 재난 이력, 현장 보고서까지 함께 이해하는 멀티모달·시공간형 기본 모델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산불이라면 연기와 열 이상 징후뿐 아니라 식생의 건조도, 바람의 방향, 확산 가능성을 함께 읽고, 홍수라면 수위 상승, 배수 지연, 도로 침수의 속도와 범위를 동시에 판단하며, 산사태라면 토양 포화, 사면 균열, 낙석 전조를 종합해 위험도를 예측해야 한다. 재난 발생 후 인식이 아니라, 발생 가능 조건과 초기 위험 신호를 먼저 포착하는 모델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상 앞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바로 초기 데이터 부족이다. 홍수, 산사태, 산불은 자주 일어나는 일상 데이터가 아니다. 대형 재난은 드물고, 막상 발생해도 영상 품질이 낮거나 시점이 제각각이며, 기관마다 저장 형식과 기준도 다르다. 어떤 지역은 CCTV는 많지만 라벨이 없고, 어떤 지역은 센서 데이터는 있으나 영상과 연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폐쇄망 환경에서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외부로 모으기도 어렵다. 기후변화로 재난 양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과거 데이터가 미래 위험을 그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결국 재난 AI의 어려움은 알고리즘보다 먼저 희소하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파운데이션 모델이 필요하다. 해법은 “재난 장면만 많이 모으자”가 아니다. 재난은 드물어도 재난의 전조와 조건 데이터는 훨씬 많다. 평상시 하천의 흐름, 강우 뒤 배수 변화, 사면의 미세한 균열, 숲의 건조 상태, 야간 열분포, 안개와 연무의 패턴 같은 데이터는 매일 축적된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는 대량의 비라벨 영상과 센서 데이터로 자기지도학습을 수행해 “정상 상태의 변화”를 먼저 학습시키고, 이후 소량의 실제 재난 데이터를 붙여 미세조정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다. 재난 자체를 충분히 보지 못하더라도, 재난으로 이어지는 이상 징후를 먼저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합성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데이터다. 홍수는 수리·수문 시뮬레이션으로, 산사태는 사면 안정 해석과 강우 침투 모델로, 산불은 풍향·경사·연료량을 반영한 확산 모델로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주간·야간, 안개, 폭우, 연기, 카메라 흔들림, 저해상도 같은 조건을 바꿔가며 학습 데이터를 만들면, 실제 사고 영상이 부족해도 모델의 초기 일반화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재난 데이터는 희귀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현장 촬영만으로는 확보가 불가능한 장면을 합성 데이터가 보완해준다. 앞으로의 재난 AI는 “실제 데이터만으로 학습하는 모델”이 아니라, 실측 데이터·시뮬레이션 데이터·합성 영상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학습 체계로 가야 한다.

또 하나의 해법은 물리 기반 모델과 AI의 결합이다. 데이터가 적을수록 AI는 그럴듯한 오판을 하기 쉽다. 반면 재난에는 비교적 분명한 물리 법칙이 있다. 일정 강우량과 토양 포화도가 넘으면 사면 위험은 커지고, 강우·유역·수문 구조를 알면 침수 가능 구간을 좁힐 수 있으며, 온도·습도·풍속 조건은 산불 확산과 밀접하다. 따라서 AI가 영상에서 이상 징후를 읽고, 물리 모델이 그것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보조 기능이 아니라, 데이터 부족 환경에서 모델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장치다. 결국 재난 AI는 “많이 본 장면을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적게 보았어도 원리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세계 공통 플랫폼도 이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정답은 하나의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아니라 공통 코어와 지역별 어댑터 구조다. 공통 코어는 재난 유형 분류 체계, 데이터 표준, 기본 모델 가중치, 위험도 산정 엔진, 설명 가능한 경보 화면, 감사 로그와 보안 체계를 제공한다. 반면 지역별 어댑터는 국가별 지형, 기후, 언어, 행정체계, 경보 기준에 맞춰 조정된다. 눈사태가 중요한 나라와 산불이 중요한 나라가 같을 수 없고, 같은 홍수라도 도시형 내수 침수와 대하천 범람은 전혀 다른 대응을 요구한다. 따라서 플랫폼은 세계 공통이어야 하지만, 판단과 책임은 철저히 지역 주권형이어야 한다.

폐쇄망이라는 조건도 오히려 협력의 새로운 방식을 요구한다. 앞으로는 원천 데이터를 모두 외부로 보내는 방식보다, 각 기관과 국가가 자체 폐쇄망 안에서 학습한 결과를 검증된 모델 패키지, 파라미터, 메타데이터 표준 형태로 교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즉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지 않고도, 성능 개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에 현장 전문가의 판독 결과를 계속 반영하는 액티브 러닝, 오경보·미탐지 사례를 재학습하는 운영 체계를 더하면, 초기 데이터 부족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완화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재난 AI를 한 번 납품하고 끝내는 제품이 아니라, 현장 경험으로 계속 진화하는 운영형 플랫폼으로 보는 관점이다.

결국 재난재해 AI 파운데이션 모델의 본질은 거대한 모델 하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연결이 끊겨도 돌아가고, 데이터가 부족해도 학습할 수 있으며, 실제 재난이 적어도 전조를 읽어내고, 각국의 제도와 지형에 맞게 적응하는 공공형 지능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재난은 인터넷이 복구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 때까지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야 할 AI도 분명하다. 적은 데이터에서 시작하되 스스로 학습하고, 실제와 가상을 함께 활용하며, 물리 법칙과 현장 경험을 결합하고, 폐쇄망 안에서도 즉시 경고할 수 있는 모델이어야 한다. 바로 그때 비로소 재난 AI는 기술 시연을 넘어, 생명과 시간을 지키는 세계 공통의 안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오정훈의 사람을 위한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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