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조절 필요한 ‘공기열 히트펌프’ 정책
[강희정 건국대 명예교수]
난방효율 낮고 전력 비용도 부담
일정 조건 충족 지역만 보급하고
도시가스 배관망 등 활용 검토를
입력2026-04-08 05:00
수정2026-04-08 05:00
지면 31면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특정 기술의 도입 여부에 좌우되지 않는다. 국가 에너지 수급 구조가 얼마나 정합적으로 설계됐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열에너지에 대한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탈탄소화 정책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정부는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에 포함하고 2035년까지 350만 대 보급 목표를 설정했다. 히트펌프는 난방의 전기화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대기 중 공기열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며 탈탄소화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설비가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투입되는 것은 전기이다. 문제는 이 전기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가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발전원의 약 56.2%는 여전히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5%에 불과하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히트펌프 가동을 위해 투입된 전기가 어떠한 구조로 생산되는가에 달려 화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는 공기열 히트펌프를 온전한 재생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공기열 히트펌프는 우리나라 기후 조건과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공기열 히트펌프의 성능은 외기 온도에 따라 크게 변동한다. 해외 실측 연구와 국내 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겨울철 외기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성능계수(COP)가 2.0 이하로 급격히 낮아지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는 투입 전력 대비 난방 효율이 크게 저하된다는 의미이다. 매년 영하 10도 이하의 한파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히트펌프 확대는 개별 가구의 선택을 넘어 국가 전력 시스템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지난해 최대 전력 수요가 95.9GW에 달했고 난방 부문의 전력 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어 에너지 안보 측면의 검토도 필요하다.
경제적 부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기열 히트펌프는 초기 설치비가 1100만~1500만 원 수준으로 가스보일러(100만~200만 원) 대비 7배 이상 높고 전력 사용 증가로 3단계 누진요금 구간(1단계 대비 요금 2.5배 상승)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가계의 에너지 비용 부담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도 고려할 부분이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 시장은 이미 소수 대기업이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지정과 정책 지원이 결합할 경우 지열·수열·태양열 등 중소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재생에너지 산업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공기열 히트펌프는 조건이 갖춰진 환경에서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낮고 혹한기 수요 변동성이 큰 한국의 현실에서는 제한된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례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히트펌프는 성능계수가 우수한 경우에 한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에 보급하고 나머지는 이미 전국망 네트워크가 구축된 기존 공급망을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기존 도시가스 배관망에 바이오가스·청정수소·e메탄 등 청정에너지를 공급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추진 및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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