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띠와 인간 방패
입력2026-04-08 17:53
지면 31면
김정곤
논설위원
1989년 8월 23일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3국이 하나의 긴 줄로 연결됐다. 각국 수도를 잇는 675㎞ 도로에 200만 명이 손을 마주 잡고 거대한 인간 띠를 만들었다. 발트 3국 인구 4분의 1이 참여한 역사적인 비폭력 시위 ‘발트의 길(The Baltic Way)’이다. 이날 시위는 그로부터 50년 전 같은 날 독일과 소련 간 불가침 밀약을 통해 발트 3국을 소련의 영향권으로 넘긴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이 인간 띠는 이듬해 발트 3국의 독립과 소비에트연방 해체를 이끌어낸 도화선이 됐다.
인간 띠는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세르비아 공습 때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세르비아 시민들은 대규모 폭격에 항의하며 가슴에 ‘표적(target)’이라는 마크를 붙인 채 교량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독재 정권의 잔혹한 인종 청소를 방어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도구로 악용됐다는 비난을 들었다.
최근 이란 전쟁에도 인간 띠가 등장했다. 이란의 주요 발전소와 교량 등을 폭파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협에 대해 이란 시민들이 이들 시설을 인간 띠로 감싸며 시위를 벌인 것이다. 겉으로는 민간 시설 공격에 항의하는 자발적 저항으로 보였으나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국영 매체를 통해 청년들의 동참을 촉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걸프전 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다국적군의 공습을 막으려고 서방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삼았던 흑역사가 겹쳐진다.
인간 띠는 저항과 항의의 표시일 때도 있고 자선·모금행사 등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인간 띠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지만 뜻깊은 의미로 각인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발트 3국의 인간 띠는 자발적 저항의 상징으로 인류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세르비아나 이라크의 사례는 국가 권력에 의해 인간 띠가 인간 방패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 띠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