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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만 있는 게 아닌데”...결제·수탁업체 사업 동력 꺼진다

[다가오는 토큰경제, 발도 못뗀 韓] <하> 블록체인 업계 생존 기로

금융사와 프로젝트 잇단 축소

기술기업 인건비 등 출혈 커져

지갑 사업자들도 줄줄이 철수

규제 샌드박스·법제정 병행을

입력2026-04-08 17:53

수정2026-04-09 14:41

지면 9면

블록체인 업체 A사가 지난해 말부터 대형 금융사와 논의해온 프로젝트 규모가 최근 축소됐다. 해당 금융사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지난해 말 통과될 것으로 보고 관련 시장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지만 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블록체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이 소규모 스타트업인 블록체인 기술 기업은 버티는 것 자체가 큰 출혈”이라며 “일정이 길어질수록 사업 포기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수익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인터넷은행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결제·송금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인 블록체인 기업은 올 상반기 디지털자산법 통과를 전제로 사업을 준비했지만 법 통과가 기약이 없는 상태라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기술 기업의 개발비는 대부분 인건비로 구성되는 만큼 일정이 지연될수록 매출 없이 비용만 누적되는 구조가 이어진다. 이 기업의 경우 약 20명의 개발 인력이 해당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어 하반기 입법 지연으로 인한 비용 부담은 평시 대비 20~3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산된다.

연창학 블록오디세이 대표는 “제도화 일정에 맞춰 사업을 준비했지만 관련 논의가 계속 미뤄지면서 인력과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한 스타트업의 관계자 역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블록체인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0’에 가깝다”며 “투자금을 기반으로 다른 사업을 병행하며 버티는 상황이다. 투자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이 기간을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인프라의 핵심인 지갑 사업자들도 잇달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고 있다. LG전자의 ‘월립토’, 라인의 ‘도시 볼트’, 로똔다의 ‘부리또 월렛’ 등이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은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연계자산(RWA) 등 블록체인 서비스가 이미 상용화 단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데 한국은 기본 법 체계조차 마련되지 못했다”며 “이대로라면 국내 블록체인 인프라는 모두 고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에서는 디지털자산법 논의가 장기간 표류하면서 블록체인 생태계 전반의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법과 관련된 업종이 업비트와 빗썸 같은 가상화폐거래소만 있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블록체인 전반으로 눈을 넓혀보면 거래소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과 기관 서비스 업체, 스테이킹, 자본 투자, 보안, 커스터디 및 지갑, 결제, 디파이 등 다양한 부문의 생태계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가 지연돼도 국내 가상화폐거래소는 수수료를 기반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나머지 인프라 기업들은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업계의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 제공 외에 별도 수익원이 없는 인프라 기업들은 개발 인력 유지 자체가 어려워 사업 포기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라며 “설령 다른 수익원이 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사업 지연에 따른 매출 목표 조정 등 경영 계획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디지털자산법은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당초 산업 전반의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추진된 법안이지만 논의가 지분 제한에 집중되면서 정작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제도 정비는 뒤로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5일 법안소위를 열고 디지털자산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금융시장 변동성과 지방선거 등에 밀려 올해 법 통과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신창선 오픈에셋 부사장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단순한 산업 진흥을 넘어 발행·유통·결제·보관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 금융 질서를 설계하는 핵심 인프라 법제”라며 “미국과 같은 주요국이 시장구조와 스테이블코인 규율을 병행해 제도화를 빠르게 추진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신속히 법을 제정해 글로벌 흐름을 따라잡되 세부적인 문제는 시행령과 감독 규정, 준비 기간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가 지연될 경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 부사장은 “혁신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실증 사업을 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스테이블코인 기업들이 해외 업체와 비교해 시장 선점 기회를 잃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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