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단체별 나누고 업무별 갈라…대기업 ‘3중 교섭’ 기본되나
■노동위, 포스코 교섭단체 분리 승인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 사실상 무너져
노조당 평균 4개월…1년 내내 협상 우려
노봉법 시행 한달…현장 혼란 여전
입력2026-04-08 18:16
수정2026-04-08 18:59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경영계가 가장 우려해온 ‘쪼개기 교섭’이 결국 현실화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8일 포스코를 상대로 한국노총 금속노련, 민주노총 금속노조, 민주노총 건설플랜트노조의 교섭 단위 분리를 모두 허용하면서 포스코는 원청 노조를 포함해 사실상 4개 노조와 각각 교섭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민간 대기업 원청을 상대로 한 첫 사용자성 판단이자 복수 하청노조의 교섭 구조를 결정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결정의 핵심은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 전 내세웠던 교섭 창구 단일화 원칙이 사실상 흔들렸다는 점이다. 정부는 개정 노조법 시행 과정에서 복수 노조가 존재하더라도 교섭 창구 단일화와 교섭 단위 분리 제도를 통해 기업 부담을 일정 부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번 포스코 사례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 내부의 금속노조와 건설플랜트노조까지 별도 교섭 단위로 인정했다. 상급 단체를 기준으로 교섭 단위 분리가 인정된 만큼 대기업의 경우 원청 노조를 포함해 적어도 2곳의 하청노조와의 교섭이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포스코처럼 제조·정비·플랜트 공정이 복합적으로 얽힌 대기업일수록 노조별 요구 사항과 교섭 일정, 의제가 서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기업의 교섭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경영계가 법 시행 전부터 제기해온 “복수 하청노조가 제각기 교섭에 나서면 사실상 연중 교섭 체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 노조의 평균 교섭 기간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의 파장은 더 크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2006년부터 2024년까지 19년간 평균 교섭 기간은 123일에 달했다. 포스코가 교섭 지위를 확보한 3개 하청노조와 원청 노조를 상대로 순차 교섭을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1년을 훌쩍 넘길 수 있다. 동시에 교섭을 진행하더라도 사측은 교섭 인력과 법률 검토, 자료 작성 등에서 기존보다 훨씬 큰 비용과 행정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 측은 이번 판정과 관련해 “향후 관련 법령이 정하는 범위에서 교섭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영계에서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기업 부담을 줄이는 안전판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다중 교섭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개정 노조법이 자율성이 원칙인 노사 관계를 노동위원회 판단과 소송으로 끌고 가며 ‘노사 관계의 사법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여전하다. 한 로펌 변호사는 “기업들 사이에서는 결국 소송까지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노동위에서 원청 사용자성 판단을 받은 뒤 실제 교섭 준비에 곧바로 들어갔다는 기업 사례는 아직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현장의 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노동위 심판이 나올 때마다 시행 전 제시됐던 원칙은 흔들리고 당시 제기됐던 우려 역시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어서다. 기업은 물론 노조들 사이에서도 눈치 보기가 짙어지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6일 기준 하청노조 985곳(조합원 14만 3786명)이 원청 367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기업은 30여 곳에 불과하다. 노동위에 이의신청을 한 노조는 170여 곳에 달했다. 반면 70여 개 노조는 신청을 취소한 뒤 현재까지 사용자성이 인정된 사례를 토대로 다시 이의신청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이날 고용노동부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가 공공기관인 태권도진흥재단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혼란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법 시행 후 전날까지 공공기관 6곳의 하청노조는 모두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당분간 노동위 판단을 서두르기보다 다른 사례를 더 지켜본 뒤 원청 사용자성 판단을 받으려는 노조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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