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쓸 방법 없던 간암에 새 길…양성자치료 10년 성적표 보니
박희철·유정일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팀
양성자 치료 간암 2000건 분석…유럽암학회지에 발표
입력2026-04-12 07:00
지면 19면
표준요법을 적용하기 힘든 난치성 간암 환자에서 양성자 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희철·유정일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연구팀은 양성자로 치료한 간암 사례 2000건을 분석한 결과를 유럽암학회지(European Journal of Cancer)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10일 밝혔다. 삼성서울병원은 2015년 말 민간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했고, 2024년 9월 국내 최초로 간암 양성자 치료 2000례를 돌파했다. 이번 연구에는 약 10년에 걸쳐 1823명(중복 치료 포함)의 간암 환자를 치료해 온 결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분석 대상은 모두 국제 가이드라인인 ‘바르셀로나 간암 병기 분류(BCLC·Barcelona Clinic Liver Cancer)’상 수술이나 고주파 소작술 같은 표준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적합하지 않았던 환자들이다. 종양 위치나 간기능, 기저 질환, 고령 등의 이유로 사실상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경우로 매우 초기 단계인 BCLC 0기부터 A기, B기, C기 순으로 간암이 진행된 다양한 병기의 환자가 두루 포함됐다.
양성자 치료는 엑스선, 감마선 대신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빛의 60%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시킨 뒤 환자 몸에 쏘아 암세포를 파괴하는 최첨단 방사선 치료법이다. 중입자 치료와 마찬가지로 일정 속도로 끌어올린 입자선이 몸 속 암세포를 타격하는 순간 에너지를 방출하고 사라지는 브래그피크(bragg peak) 현상을 이용한다. 암조직만 정밀하게 타격해 막대한 양의 방사선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에 주변 정상 조직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고난도 술기가 필수적이다.
삼성서울병원은 호흡동조기술을 포함한 엑스선 기반 간암 방사선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정밀도를 높였다. 치료 전 4차원(4D) 특수 컴퓨터단층촬영(CT)를 찍어 숨쉴 때 암과 장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고, 치료 시 실시간 호흡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일정한 호흡주기에서만 양성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초기 간암뿐 아니라 상당히 진행된 단계에서도 양호한 경과를 보였다. 양성자치료를 받은 표적 종양에서 2년 동안 암이 재발하거나 더 진행하지 않은 비율은 BCLC 0기에서 95.5%였고 A기(93.9%)와 B기(98.5%), C기(87.6%)에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3년으로 추적 기간을 넓혔을 때도 BCLC 0기 91.1%, A기 91.3%, B기 95.0%, C기 83.3%로 양호한 경과를 보였다. 암 치료 성적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전체 생존율은 3년 기준 BCLC 0기 81.1%, A기 65.5%, B기 45.5%, C기 37.2%로 집계됐다. 간암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군에서도 의미 있는 치료 성적을 보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 같이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으로 다학제 협진 체계를 꼽았다. 소화기내과와 외과, 영상의학과,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등 여러 진료과 전문의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통해 적정 환자군을 선별하고, 그간 축적된 간암 방사선 치료 경험을 접목해 양성자 치료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초당 40 그레이(Gy) 이상의 고선량의 방사선을 1초 미만의 찰나의 순간에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방식인 플래시 기술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다학제 협진과 양성자 치료 프로토콜을 표준화해 만든 가장 큰 단일 센터 코호트를 구축한 덕분”이라며 “풍부한 치료 경험을 갖춘 간암센터 시스템 안에서 양성자 치료는 환자의 예후를 개선해 나가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자치료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희철 교수는 “양성자치료는 기존 치료가 부적합한 간암 환자에서 높은 국소 제어율과 생존율을 기대할 수 있는 확실한 치료 대안이 됐다”며 “향후 전향적 연구를 통해 그 역할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는 2025년 기준 전체 치료 환자 수가 8183명을 넘어섰다. 치료 건수로는 10만 건이 넘는다. 2025년 9월까지 치료한 7908명 가운데 간암 환자가 2403명으로 가장 많았고 두경부암 1466명, 폐암 1304명, 뇌종양 676명, 췌담도암 377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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