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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칼럼] 106세 철학자의 고언

1920년생 김형석 교수 본지 조찬강연

화내지도 남 욕도 말아야 오래 살더라

“지금 정치는 여야 모두 이기적” 경종

사욕 아닌 공익 앞세운 협치로 화답을

입력2026-04-10 06:00

수정2026-04-10 06:00

지면 30면
문성진

문성진

논설실장

문성진 논설실장 칼럼 최종
문성진 논설실장 칼럼 최종

올해 106세로 국내 최고령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최근 서울경제신문 조찬 포럼 강연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보이는 것들: 전환의 시대, 변하지 않는 가치’라는 제목의 1시간이 넘는 강연은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감이 컸다. 강연 도중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청중도 있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인상적인 강연이었다.

김 명예교수는 ‘장수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자문자답으로 나름의 견해를 밝혔다. “내 친구나 아는 사람 가운데 100세까지 산 사람이 7명 있는데 그들에게는 공통된 점이 있다”며 화를 내지 않고 남의 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 “후회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가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김 명예교수가 1947년부터 서울 중앙고 교사로 있을 때 만난 인촌 김성수에 대한 인물평이었다. “(인촌은) 낮은 야산만 보고 살았던 나에게 큰 봉우리와 같다는 인상을 줬다”며 “자신이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하기보다 유능한 사람에게 믿고 맡겨 교육과 산업·언론 등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촌은 어떤 일에도 개인의 사익보다 국가와 민족의 공익을 우선하는 이타성을 일관되게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여야를 막론하고 이기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물론 일제 말 학병을 독려하는 등 친일 행적을 남긴 인촌에 대한 이 같은 찬사가 마뜩잖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명예교수가 강조한 ‘이타적 정치’의 가치는 당리당략에 매몰된 현 정치권이 경종으로 삼을 만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계파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를 당내로 끌어들여 세력을 키우려 한다는 친명계의 반발로 좌초됐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내부 갈등 와중에 유시민 작가가 촉발한 ‘ABC’ 논란은 내분을 증폭시켰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대통령 사진 활용 금지’ 진위 논란으로 친청 당권파와 친명계 간 ‘명청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난제를 앞에 두고 권력 다툼이나 하는 집권당의 모습은 나라를 위하는 이타적 정치가 아니라 사사로이 권력을 탐하는 이기적 정치에 가깝다.

국민의힘은 더 가관이다. 불법적 12·3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이 요원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뒤늦게 ‘절윤’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행태는 절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내치기에 여념이 없다. 지방선거 공천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물로 바람을 일으켜도 모자랄 판에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 인사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당의 자멸을 재촉하는 모양새다. 한국갤럽이 전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48% 대 국민의힘 18%로 무려 30%포인트의 역대 최대 격차를 보이게 된 데는 장 대표 탓이 크다.

끝 모를 중동 전쟁이 우리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여야 모두가 이기심을 버리고 일치단결된 협치로 위기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회담’을 가진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다. 더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만남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진심과 행동이다. 이날 회담에서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내부적 단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 이 대통령의 호소가 여야 간, 정부와 야당 간 많은 만남을 통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가적 위기 앞에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정부와 국회가, 여와 야가 손을 맞잡고 나아가자”고 했다. 이 다짐이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우리 정치가 이기적 정치를 벗어나 이타적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 김 명예교수가 강연 끝에 밝힌 “우리 민족이, 우리 국가가, 가족들이 행복하게 좋은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 버림받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꿈이 여야의 이타적 협치를 통해 이뤄졌으면 좋겠다. 지금 즉시 여야가 사욕보다 공익을 앞세우기를 당부한 김 명예교수의 고언을 듣고 따르지 않으면 미래 세대가 더 좋은 나라를 이어받기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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