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전면 확대, 기업들 부담도 함께 살펴야
입력2026-04-10 00:05
지면 31면
증권 분야에 한정됐던 집단소송제를 기업 활동 전반으로 확대하는 입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는 8일 집단소송법 관련 법안 13건을 일괄 상정했다. 상장 기업의 허위 공시 등 제한된 영역에만 적용되던 집단소송 대상을 개인정보 침해, 제조물 책임, 일반 불법행위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단소송법을 이달 중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집단소송제 전면 확대는 쿠팡과 통신사 등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의 330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거론하며 집단소송제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법으로는 충분한 구제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여당에 제도를 보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제는 여권이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를 주도하면서 기업의 부담과 산업계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집단소송제의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법안을 세밀히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피해액의 최대 5배를 물어주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기업이 과실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까지 포함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중 처벌 논란이, 디스커버리 제도는 과도한 자료 요구로 기업의 영업 비밀을 노출할 위험이 우려된다. 더 큰 문제는 법 시행 이전 사건까지 소급 적용하는 부칙까지 대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는 헌법상 소급 입법 원칙을 훼손해 법적 안정성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집단소송제의 전면 확대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검토한 뒤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 것은 ‘소송 남발’이라는 명확한 부작용 때문이다.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막대한 합의금을 노린 전문 소송꾼이 활개를 치면서 기업들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조차 소송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집단소송제를 전면 확대하기 전에 정교한 설계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소송 여건의 엄격한 제한과 독소 조항부터 걸러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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