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듣기

  • 글자 크기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 기사 공유

  • 북마크

  • 다크모드

  • 프린트

네이버 채널구독

다음 채널구독

정교한 설계 필요한 ‘근로자 추정제’ 입법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미흡 땐 적용범위 등 불확실성 키워

선별·단계 적용 벨기에 사례 참고

노동시장 보호·유연성 균형 찾길

입력2026-04-15 05:00

수정2026-04-15 05:00

지면 31면

최근 플랫폼 노동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처럼 노동법의 경계에 놓인 종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근로자로 추정하는 ‘근로자추정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임금·퇴직금, 연차, 초과·야간·휴일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확대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 설계가 정교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송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근로자추정제는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용자가 이를 반증하도록 하는 구조다. 그간 소송 원칙에 따라 근로자성 입증은 근로자가 해야 하며 대법원은 근로자성 판단 기준으로 지휘·감독 여부, 근무시간·장소의 구속성, 보수의 성격, 전속성, 사업상 위험 부담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왔다. 근로자추정제 법안은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하면서도 법상 추정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근로자성 범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근로자 추정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근로기준법의 적용 구조 자체가 사실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법과 유사한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기존 입법 구조에서도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황에 따라 근로자 지위와 프리랜서 지위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존재했다. 여기에 근로자추정제까지 결합하면 법률관계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유인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는 당사자들이 유리한 제도나 절차를 선택해 소송을 제기하는 ‘법률 쇼핑’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민사적 권리 구제를 통한 노동자 보호 장치로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근로 감독과 분리해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제도가 도입되면 민사와 감독 행정 영역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집단적 분쟁으로 확대될 경우 민사상 배상책임 문제가 형사책임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사업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법적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다.

정책은 단순히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명백히 불법 소지가 큰 영역에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가짜 3.3계약(근로계약 대신에 사업소득세 3.3%를 적용하는 계약)’이다. 이는 형식상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 지휘와 통제를 받는 경우다. 이런 영역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노동관계를 지금 법안처럼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 현장에서 보호가 필요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도급계약의 공간을 축소해 시장의 다양성과 일자리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해외 사례는 개선 방향에 시사점을 준다. 비교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벨기에 플랫폼법’은 근로자 추정을 전면 확대하기보다 특정 업종부터 적용하고 노동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제도의 정교함이다. 제도는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근로자추정제는 노동시장 보호와 유연성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다. 취지는 보호지만 제도가 모호하거나 과도하면 노동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 결국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정밀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다음
이전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