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혜의 K판타지아] AI와 협업, 케임브리지에서 묻다
선승혜 주영국한국문화원장
서구 미술사학 관점서 AI는 경계대상
‘협력해 상상력 키울 기술’ 시각도 필요
AI로 어떤 문화 만들 것인지가 중요
입력2026-04-18 05:00
수정2026-04-18 05:00
지면 23면
영국 케임브리지는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AI)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수학자 앨런 튜링이 펠로(연구자)로 활동했던 곳이다. 이 도시는 AI의 원형적 사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오늘날에도 AI 연구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의 ‘인간 중심 인공지능(Human-Inspired Artificial Intelligence)’ 박사과정은 인간 중심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사회적으로 유익한 AI를 설계할 차세대 연구자를 길러내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인간의 어떤 모습과 어떤 가치에서 AI의 영감을 끌어낼 것인가.
최근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 영국미술사학회 연차대회는 서구 미술사학이 AI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사흘간 100여 개 세션에서 47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그중 특히 눈에 띈 것은 AI를 다룬 네 개의 세션과 20여 편의 논문 발표였다. 이번 학회에서 AI는 가장 첨단적인 주제였고 이를 큐레이팅, 미술사 교육과 같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성한 세션이 주목받았다.
첫날 세션은 AI와 예술계를 둘러싼 비판적 담론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컴퓨팅과 AI의 구조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대상화하는지, 텍스트·이미지 생성 도구가 ‘돌봄’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왜곡하는지가 논의됐다. 이어진 세션에서는 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이 기술을 저항과 전복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이튿날 오전 미술사 교육 세션에서는 환각, 윤리, 디지털 학습 환경의 부작용이 주요 쟁점으로 제시됐다. 이 발표들을 관통하는 서구의 어조는 비교적 분명했다. 편향·환각·식민성·응시. AI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학문은 비판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필자는 마지막 세션 ‘AI와 큐레이션: 위험과 기회’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진행한 인간·AI 협업 기반 디지털 문화유산 전시를 사례로 들며 AI를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돌봄과 해석·확장의 동반자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AI를 새로운 협력의 대상으로 삼을 때 문화유산의 해석도, 미래의 상상력도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자의 낙관적인 발표는 K드라마처럼 인기가 있었다.
한국은 AI를 실용적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뜻을 펼칠 수 있다고 본다. K팝이 세계 곳곳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보편적 음악이 됐듯이 공동의 형식 안에서 각자의 감정과 뜻을 풀어내는 한국 미학에 황금 열쇠가 있다.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로 인간의 뜻을 멋들어지게 풀어내려는 흐름에 상상력을 집중해 발화하는 것이다. AI의 기술 수준이 아니라 AI를 통해 어떤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뜻을 모을 때 국가의 미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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